100년 만에 '佛의 제전'…아트파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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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26일부터 17일간 대장정
파리올림픽, 26일부터 17일간 대장정
“올림픽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때가 왔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황금기, 심지어 네로 황제가 군림한 뒤로도 예술과 문학은 스포츠와 결합해 올림픽의 위대함을 꽃피웠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쿠베르탱(1863~1937)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10여 년 뒤 이렇게 썼다. 쿠베르탱의 염원은 한 세기를 뛰어넘어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라는 자부심으로 프랑스 정부가 7년간 준비한 ‘2024 파리 올림픽’이다.
4년마다 땀 흘린 국가대표 선수들이 종목별로 겨뤄 순위를 매기는 올림픽이라는 글로벌 이벤트.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가 진부하고 구시대적이며 다소 무의미한 경쟁이라고 여겼다면 올해는 관점을 좀 바꿔봐도 좋겠다. 에펠탑과 콩코르드 광장, 베르사유 궁전과 센강,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등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으로 가득한 파리 도심의 명소들이 모두 경기장과 행사장이 된다. 에펠탑 앞에서 발리볼 경기를, 그랑팔레에서 태권도 시합을, 센강에서의 수영은 물론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양궁 경기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패션의 도시답게 명품 브랜드들도 앞다퉈 올림픽에 힘을 보탰다. 루이비통 모노그램 트렁크가 메달 운반용으로 쓰이고, 쇼메의 장인들이 메달을 디자인했다. 각 나라의 선수 단복과 올림픽 크루들의 패션만 비교해 봐도 눈이 즐겁다.
27일 새벽 2시30분(한국시간)에 중계될 파리올림픽 개막식도 놓치지 말자.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야외에서 열린다. 스타디움 대신 파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센강에서 올림픽 대표단 선수들을 태운 보트 85척이 수상 퍼레이드를 연다. 출연자 명단은 당일까지 비공개지만 투병 중이던 팝스타 셀린 디옹과 레이디 가가 등 세계 문화계 톱스타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100년 만에 파리로 돌아온 올림픽 준비 과정엔 여러 잡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도심이 모두 통제돼 상인과 거주민의 불편도 많았고, 센강 정화와 도로 정비 등에 쓰인 비용 등으로 아직도 시끄럽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상상도 못할, 세상에 없던 파리올림픽의 중심엔 프랑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문화유산과 예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수한 셈이다. 프랑스는 알고 있다. 올여름 약 2주간 펼쳐질 올림픽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앞으로도 100년 넘게 생동하게 하리라는 것을.에펠탑 아래선 비치발리볼…'혁명의 광장'엔 비보잉 춤판
올해 파리 올림픽 포스터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2024 제33회 파리 올림픽’과 ‘2024 파리 패럴림픽’이다. 두 장을 좌우로 이어 붙여야 온전한 작품이 된다.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포스터가 합쳐진 건 지금껏 유례없는 일. ‘완전히 개방된 대회’라는 이번 행사 주제에 걸맞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로 5m 세로 4m 화면에 파리에서 펼쳐지는 54개 종목(올림픽 32개·패럴림픽 22개)을 빠짐없이 옮기면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이 ‘월리’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동일한 비율로 그린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캐릭터 4만여 명이 각각 한 사람의 주인공 역할을 다한다.
포스터를 그린 작가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다. 1988년생인 그는 에르메스, 카르티에 등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찌감치 알려졌다. 2017년 서울 압구정동에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들어설 때 매장 창문에 그려 넣은 ‘열심히 일하는 말’로 국내 미술계에도 눈도장을 찍었다. 신화 또는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가토니의 그림은 화려하면서 세밀하다. 연필과 물감 등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하는 작업 방식의 결과다. 이번 올림픽 포스터를 제작하는 과정에선 약 6개월 동안 2000시간을 투입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손으로 그렸기 때문에 각 상징물이 독특하게 빛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토니의 포스터는 파리 지도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강물이 도심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림 속 파리는 중앙에 섬처럼 들어선 광장 주변으로 센 강이 흐르는 형태다. 바깥쪽 강둑 부분은 마치 원형 스타디움을 둘러싼 객석처럼 묘사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구도는 27일 새벽(한국시간) 열리는 파리 올림픽 개회식과 맞닿아 있다. 각국 선수단이 보트를 타고 센 강을 따라 파리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행진할 예정이다. 경기장 바깥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이다. 강줄기가 기존의 원형 운동장 트랙을 대신하고, 강둑이 관객석으로 탈바꿈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셈이다. 포스터의 서사는 왼쪽 하단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출발해 강물을 따라 이동한다. 그랑팔레와 앵발리드 등 파리 중심지들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다리 양옆으로 배치된 네 개의 황금빛 동상이 인상적인 곳으로, 개회식 등 주요 행사 공간으로 낙점됐다. 사이클과 트라이애슬론, 10㎞ 마라톤 수영 종목이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운데 들어선 에펠타워 스타디움이다. 에펠탑 앞 상드마르스 공원에 조성된 임시 경기장으로, 비치발리볼 경기가 펼쳐진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그랑팔레가 나온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유리 천장 건물이다. 올해 펜싱과 함께 한국의 태권도 종목이 이곳에서 나란히 열린다.
장소들에 얽힌 사연을 살펴보는 것도 경기를 색다르게 바라보는 묘미다. 콩코르드 광장이 그중 하나다.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며 ‘혁명의 광장’으로 불리게 된 곳이다. 변화의 선봉에 앞장서온 콩코르드 광장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브레이킹과 스케이트 종목 경기가 열린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나면 앵발리드에서 시선이 멈춘다. 현대 올림픽의 기원이 된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 전투를 기리기 위해서일까.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은 마라톤의 결승점으로서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다.'올림피아 정신' 드높인 루브르, 나이키로 뒤덮인 퐁피두센터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운동선수만의 제전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물론 ‘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도 특별전을 열면서 ‘문화 올림픽’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 샹젤리제 공원에 아프리카 전통 의상 차림의 여성 흑인 조각상이 들어섰다. 양손에는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올리브 나무와 올림픽 성화를 쥐고 있다. 승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행인 누구에게나 쉼터를 내준다. 조각을 둘러싼 의자 여섯 개는 서로 다른 대륙과 산업, 직업, 관심사를 의미한다. IOC가 주도하는 ‘올림픽 아트 비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 예술 ‘살롱’이다. 저명한 예술가를 선정해 올림픽 가치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개최 도시에 설치하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선 프랑스 예술가 자비에 베이앙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한 군상이 들어섰다.
올해 올림픽에서 선정된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앨리슨 사르(68)다. 1970년대부터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흑인 여성을 주제로 조각과 혼합 매체 등을 선보여온 작가다. 미국 흑인 여성을 기리는 최초의 공공기념물 중 하나인 뉴욕의 해리엇 터브먼 기념상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민속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파리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이 작품이 문화와 국경을 넘어 우정과 상호 연결의 정신을 상징하는 통합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림픽의 의미를 돌아보는 정부 차원의 문화 행사는 ‘올림피즘, 세계사’ 전시로 이어진다. 60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올림픽 첫해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인 순간을 정리했다. 전시는 파리의 역사박물관인 팔레 드 라포르트 도레에서 9월 8일까지 열린다.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의 멀리뛰기 사진도 그중 하나다. 가난한 노예 집안 출신인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단거리 4관왕을 거머쥐었다. 당시 나치 정권이 내세우던 인종 우월주의를 단번에 무색하게 만든 순간이다.
루브르박물관의 ‘올림피즘: 현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 특별전은 올림픽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의 기원으로 알려진 헤라클래스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도자기 등 유물을 선보인다. 제1회 근대올림픽 마라톤 대회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진 ‘브레알의 은잔’도 주요 볼거리다.
오르세미술관은 근대올림픽이 태동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작품을 중심으로 맞선다. ‘나비파’를 창립한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의 회화가 대표적이다. 나무 덤불 속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꽃을 따고 목욕하는 여성들을 순수한 색채와 상징주의를 결합해 그렸다. 나비파는 19세기 말 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반인상주의 젊은 화가 그룹이었다. 1892년께 상징주의 문예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비롭고 대담한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이 각각 고대와 근대를 다뤘다면, 퐁피두센터는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내부의 철근 구조물이 밖으로 노출된 건물의 외벽이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나이키와 협업한 ‘아트 오브 빅토리’ 전시다. 에어(AIR) 시리즈의 탄생 과정을 중심으로 스포츠 분야의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조명한다.
김보라/안시욱/서재원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쿠베르탱(1863~1937)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10여 년 뒤 이렇게 썼다. 쿠베르탱의 염원은 한 세기를 뛰어넘어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라는 자부심으로 프랑스 정부가 7년간 준비한 ‘2024 파리 올림픽’이다.
4년마다 땀 흘린 국가대표 선수들이 종목별로 겨뤄 순위를 매기는 올림픽이라는 글로벌 이벤트.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가 진부하고 구시대적이며 다소 무의미한 경쟁이라고 여겼다면 올해는 관점을 좀 바꿔봐도 좋겠다. 에펠탑과 콩코르드 광장, 베르사유 궁전과 센강,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등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으로 가득한 파리 도심의 명소들이 모두 경기장과 행사장이 된다. 에펠탑 앞에서 발리볼 경기를, 그랑팔레에서 태권도 시합을, 센강에서의 수영은 물론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양궁 경기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패션의 도시답게 명품 브랜드들도 앞다퉈 올림픽에 힘을 보탰다. 루이비통 모노그램 트렁크가 메달 운반용으로 쓰이고, 쇼메의 장인들이 메달을 디자인했다. 각 나라의 선수 단복과 올림픽 크루들의 패션만 비교해 봐도 눈이 즐겁다.
27일 새벽 2시30분(한국시간)에 중계될 파리올림픽 개막식도 놓치지 말자.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야외에서 열린다. 스타디움 대신 파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센강에서 올림픽 대표단 선수들을 태운 보트 85척이 수상 퍼레이드를 연다. 출연자 명단은 당일까지 비공개지만 투병 중이던 팝스타 셀린 디옹과 레이디 가가 등 세계 문화계 톱스타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100년 만에 파리로 돌아온 올림픽 준비 과정엔 여러 잡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도심이 모두 통제돼 상인과 거주민의 불편도 많았고, 센강 정화와 도로 정비 등에 쓰인 비용 등으로 아직도 시끄럽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상상도 못할, 세상에 없던 파리올림픽의 중심엔 프랑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문화유산과 예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수한 셈이다. 프랑스는 알고 있다. 올여름 약 2주간 펼쳐질 올림픽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앞으로도 100년 넘게 생동하게 하리라는 것을.
에펠탑 아래선 비치발리볼…'혁명의 광장'엔 비보잉 춤판
도시 전체가 경기장…포스터부터 '하나의 예술작품'
올해 파리 올림픽 포스터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2024 제33회 파리 올림픽’과 ‘2024 파리 패럴림픽’이다. 두 장을 좌우로 이어 붙여야 온전한 작품이 된다.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포스터가 합쳐진 건 지금껏 유례없는 일. ‘완전히 개방된 대회’라는 이번 행사 주제에 걸맞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로 5m 세로 4m 화면에 파리에서 펼쳐지는 54개 종목(올림픽 32개·패럴림픽 22개)을 빠짐없이 옮기면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이 ‘월리’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동일한 비율로 그린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캐릭터 4만여 명이 각각 한 사람의 주인공 역할을 다한다.포스터를 그린 작가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다. 1988년생인 그는 에르메스, 카르티에 등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찌감치 알려졌다. 2017년 서울 압구정동에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들어설 때 매장 창문에 그려 넣은 ‘열심히 일하는 말’로 국내 미술계에도 눈도장을 찍었다. 신화 또는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가토니의 그림은 화려하면서 세밀하다. 연필과 물감 등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하는 작업 방식의 결과다. 이번 올림픽 포스터를 제작하는 과정에선 약 6개월 동안 2000시간을 투입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손으로 그렸기 때문에 각 상징물이 독특하게 빛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토니의 포스터는 파리 지도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강물이 도심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림 속 파리는 중앙에 섬처럼 들어선 광장 주변으로 센 강이 흐르는 형태다. 바깥쪽 강둑 부분은 마치 원형 스타디움을 둘러싼 객석처럼 묘사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구도는 27일 새벽(한국시간) 열리는 파리 올림픽 개회식과 맞닿아 있다. 각국 선수단이 보트를 타고 센 강을 따라 파리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행진할 예정이다. 경기장 바깥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이다. 강줄기가 기존의 원형 운동장 트랙을 대신하고, 강둑이 관객석으로 탈바꿈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셈이다. 포스터의 서사는 왼쪽 하단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출발해 강물을 따라 이동한다. 그랑팔레와 앵발리드 등 파리 중심지들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다리 양옆으로 배치된 네 개의 황금빛 동상이 인상적인 곳으로, 개회식 등 주요 행사 공간으로 낙점됐다. 사이클과 트라이애슬론, 10㎞ 마라톤 수영 종목이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운데 들어선 에펠타워 스타디움이다. 에펠탑 앞 상드마르스 공원에 조성된 임시 경기장으로, 비치발리볼 경기가 펼쳐진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그랑팔레가 나온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유리 천장 건물이다. 올해 펜싱과 함께 한국의 태권도 종목이 이곳에서 나란히 열린다.
장소들에 얽힌 사연을 살펴보는 것도 경기를 색다르게 바라보는 묘미다. 콩코르드 광장이 그중 하나다.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며 ‘혁명의 광장’으로 불리게 된 곳이다. 변화의 선봉에 앞장서온 콩코르드 광장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브레이킹과 스케이트 종목 경기가 열린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나면 앵발리드에서 시선이 멈춘다. 현대 올림픽의 기원이 된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 전투를 기리기 위해서일까.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은 마라톤의 결승점으로서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다.
'올림피아 정신' 드높인 루브르, 나이키로 뒤덮인 퐁피두센터
대표 미술관 올림픽 특별전…도시의 저력 자랑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운동선수만의 제전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물론 ‘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도 특별전을 열면서 ‘문화 올림픽’에 뛰어들고 있다.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 샹젤리제 공원에 아프리카 전통 의상 차림의 여성 흑인 조각상이 들어섰다. 양손에는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올리브 나무와 올림픽 성화를 쥐고 있다. 승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행인 누구에게나 쉼터를 내준다. 조각을 둘러싼 의자 여섯 개는 서로 다른 대륙과 산업, 직업, 관심사를 의미한다. IOC가 주도하는 ‘올림픽 아트 비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 예술 ‘살롱’이다. 저명한 예술가를 선정해 올림픽 가치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개최 도시에 설치하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선 프랑스 예술가 자비에 베이앙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한 군상이 들어섰다.
올해 올림픽에서 선정된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앨리슨 사르(68)다. 1970년대부터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흑인 여성을 주제로 조각과 혼합 매체 등을 선보여온 작가다. 미국 흑인 여성을 기리는 최초의 공공기념물 중 하나인 뉴욕의 해리엇 터브먼 기념상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민속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파리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이 작품이 문화와 국경을 넘어 우정과 상호 연결의 정신을 상징하는 통합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림픽의 의미를 돌아보는 정부 차원의 문화 행사는 ‘올림피즘, 세계사’ 전시로 이어진다. 60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올림픽 첫해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인 순간을 정리했다. 전시는 파리의 역사박물관인 팔레 드 라포르트 도레에서 9월 8일까지 열린다.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의 멀리뛰기 사진도 그중 하나다. 가난한 노예 집안 출신인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단거리 4관왕을 거머쥐었다. 당시 나치 정권이 내세우던 인종 우월주의를 단번에 무색하게 만든 순간이다.
루브르박물관의 ‘올림피즘: 현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 특별전은 올림픽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의 기원으로 알려진 헤라클래스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도자기 등 유물을 선보인다. 제1회 근대올림픽 마라톤 대회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진 ‘브레알의 은잔’도 주요 볼거리다.
오르세미술관은 근대올림픽이 태동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작품을 중심으로 맞선다. ‘나비파’를 창립한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의 회화가 대표적이다. 나무 덤불 속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꽃을 따고 목욕하는 여성들을 순수한 색채와 상징주의를 결합해 그렸다. 나비파는 19세기 말 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반인상주의 젊은 화가 그룹이었다. 1892년께 상징주의 문예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비롭고 대담한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이 각각 고대와 근대를 다뤘다면, 퐁피두센터는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내부의 철근 구조물이 밖으로 노출된 건물의 외벽이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나이키와 협업한 ‘아트 오브 빅토리’ 전시다. 에어(AIR) 시리즈의 탄생 과정을 중심으로 스포츠 분야의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조명한다.
김보라/안시욱/서재원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