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겸 ‘빈 공간’(2005).   우손갤러리 제공
김인겸 ‘빈 공간’(2005). 우손갤러리 제공
대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고(故) 김인겸(1945~2018) 작가의 개인전 ‘조각된 종이, 접힌 조각’은 조각적 단순함을 추구한 작가의 말년 작업을 돌아본다. ‘스페이스리스’와 ‘빈 공간’ 시리즈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두 연작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듯 조응한다. 스페이스리스는 넓적한 미술 도구인 스퀴즈로 물감과 먹을 얇게 펴 바른 종이 작업이다. 종이 위에 여러 층의 면을 겹쳐 그리며 입체감을 표현했다. 빈 공간은 이런 이미지를 3차원(3D) 모형으로 구현한 조각이다. 강철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통해 입체적으로 제작됐지만 오히려 평면성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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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작가가 ‘접힌 조각’을 내놓자 미술계에선 의아해했다. 이전 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프로젝트21-내추럴 넷’의 중량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작가는 아크릴 구조물과 물을 채운 수조, 컴퓨터 모니터, CCTV 등을 활용한 설치 작업으로 한국관 1·2층 사이 나선형 계단 주변을 꾸몄다.

반응은 뜨거웠다. 2001년 파리 오데옹5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두고 프랑스 평론가 기부아이에는 이렇게 평했다. “어떻게 종이로 된 2차원 평면이 조각 작품과 주변 공간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접힌 조각들, 그리고 조각된 종이들은 파리의 갤러리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 작가의 딸인 김재도 홍익대 초빙교수는 “파리에서 활동한 이방인 작가로서 (선친의) 고민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대형 조각을 제작할 작업실과 값비싼 재료를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기존에 사용한 무거운 재료 대신 잡지와 신문지 등 각종 종이를 접고 자르는 새로운 시도에 나선 이유다. 제아무리 가냘픈 종이라도 접고 구부리면 우뚝 서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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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면을 가만히 두면 설 수 없다. 하지만 간단히 접는 행위만으로도 쓰러지지 않는다. 둥글게 구부리고, 오리며 붙이고…. 내가 추구하는 조형의 세계가 여기 있다’고요.” 전시는 오는 4월 19일까지.

대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