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달 21일엔 경기 평택에도 극자외선(EUV) 장비가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신설 계획을 내놨다.  /한경 DB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달 21일엔 경기 평택에도 극자외선(EUV) 장비가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신설 계획을 내놨다. /한경 DB
삼성전자가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에 시스템 반도체를 손쉽게 설계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했다. 삼성에 우호적인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반도체 설계 후공정 업체)를 늘리는 게 목적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1위를 노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생태계 확장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팹리스 챙기기 나선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플랫폼 업체인 리스케일은 18일 통합 클라우드 설계 플랫폼 ‘SAFE-CDP’를 선보였다. 팹리스 업체들이 언제 어디서나 칩 설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시스템 반도체 생산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반도체 칩 설계도 까다로워졌다. 설계 작업의 후반부로 갈수록 복잡한 계산이 많아진다. 이런 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필요한 만큼의 저장공간과 소프트웨어 서버를 패키지로 빌리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칩의 성능을 검증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양이 상당하고 컴퓨팅 자원도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클라우드 비용 부담을 고민하는 팹리스가 많다는 걸 감안해 플랫폼을 개발하게 됐다”며 “SAFE-CDP가 팹리스업계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팹리스업계에선 SAFE-CDP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본격 서비스에 앞선 테스트에서 성과가 확인됐다. 차량용 반도체 칩 설계에 삼성의 플랫폼을 활용했던 가온칩스는 기존 플랫폼을 쓸 때보다 설계에 걸리는 기간을 약 30% 단축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강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지원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팹리스 업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개발부터 양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돕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와 별도로 팹리스 업체의 제품 개발을 돕기 위해 시제품을 제작해주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프로그램을 공정당 연 3~4회 운영 중이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국내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개발자들에게 레이아웃, 설계 방법론, 검증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기업 간 경쟁’에서 ‘생태계 간 경쟁’으로

파운드리 진격하는 삼성…TSMC 꺾을 '팹리스 군단' 키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 업체다. 2분기 기준 점유율이 18.8%(트렌드포스 기준)다. 하지만 1위인 대만 TSMC(51.5%)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공정 미세화 등 기술적인 부분에선 TSMC와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파운드리 전후 공정과 연계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특히 비슷한 분야의 업체들을 연결해주거나 팹리스와 협력하면 좋을 디자인하우스를 소개해주는 네트워킹이 아쉽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TSMC와의 격차를 줄이려면 더 많은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를 삼성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태계의 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것은 파운드리 업체들만이 아니다. 글로벌 팹리스들도 업계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소 팹리스들을 지원하고 있다. 자사의 설계자산(IP)을 활용하는 업체가 많아져야 IP 사용료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고객사 수=미래 수익’이란 공식이 파운드리와 팹리스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 설계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ARM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12호 ‘자상한 기업(자발적 상생협력기업)’으로 선정됐다. ARM은 설계 패키지인 ‘플렉서블 액세스’를 향후 3년간 국내 스타트업 10곳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 패키지를 활용하면 ARM이 보유한 IP의 75%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