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남쪽 외딴섬…이보다 더 맑은 곳이 있을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맑고 청정한 남도 섬 4選…장도·상태도·중태도·하태도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맑고 청정한 남도 섬 4選…장도·상태도·중태도·하태도

신비한 해무가 감싸고 있는 장도

흑산도의 작은 부속 섬이자 여객선도 들르지 않는 오지 낙도인 장도가 잠시나마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습지 때문이다. 장도 습지는 2004년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2005년 람사르 습지로 인증됐다. 장도 습지는 섬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산지습지다.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한 습지의 역할은 지대하다. 멸종위기종인 야생 동식물의 24%가 습지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장도 사람들은 이 습지 덕분에 물 걱정 없이 살아왔다. 산 정상에서는 용천수가 끊임없이 솟아나곤 했었다. 습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을 살리는 생명수의 원천이다. 장도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 매, 솔개, 조롱이 등과 습지식물 294종, 포유류 7종, 조류 44종, 양서 파충류 8종, 육상곤충 126종, 식물군락 26개 등이 서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지 습지가 과거에는 논으로 이용됐듯이 장도의 습지 또한 섬의 유일한 논이 있던 곳이다. 섬에서 쌀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생각하면 장도 습지는 황금 논이었다. 장도를 비롯한 흑산도 인근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0㎜ 내외밖에 안 되는 대표적인 소우 지역이다. 그런데도 장도가 물이 풍부하고 논농사까지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이 습지 덕분이다. 논농사가 작파된 뒤에는 습지가 소 방목장이 됐다. 한 집당 보통 5마리씩, 많은 집은 20마리까지 길렀다. 장도 습지에 한때는 소가 150마리나 됐다. 제법 큰 목장이었던 셈이다. 소는 13년 정도 길렀다. 소 파동이 나서 송아지 한 마리가 10만원씩 하게 되자 다들 소를 정리했고, 습지에서는 더 이상 소도 기르지 않게 됐다.

목포항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홍어는 흑산 홍어다. 하지만 홍어는 옹진군 대청도 어장에서도 많이 잡힌다.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 등은 옛날부터 홍어잡이로 큰 소득을 올렸다. 그런데 어째서 흑산 홍어가 이름 높을까. 그것은 바로 태도 서바다에서 잡히는 홍어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대청도, 백령도 인근 바다에 살던 홍어 떼가 가을철이면 남쪽으로 이동해 봄까지 머무른다. 이때가 산란기인 까닭이다. 산란철 홍어는 살이 찌고 영양가가 많아져 맛이 들 대로 든다. 이 산란철 홍어가 모여드는 곳이 태도 서바다다. 흑산 홍어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 태도 서바다에서 잡은 살찐 산란기 홍어 때문인 것이다.


“서바다에서 나는 홍어, 그 홍어가 진짜예요. 암치 하나가 12~13㎏까지 나가는데 지금은 많이 나가야 7~8㎏밖에 안 나가요. 그게 진짜 원조 홍어였어요. 지금은 대청도, 백령도에서 잡아 오죠. 그러니 진짜 흑산 홍어가 아닌 셈이죠.”
태도 서바다 중에서도 홍어가 가장 잘 잡히는 포인트는 느리섬과 어린여다.
태도군도의 섬들, 상·중·하태도는 내륙 사람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난생처음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부근의 홍도와 흑산도, 가거도, 만재도 같은 이름난 섬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무명으로 숨겨져 있는 낙도다. 낙도 중에서도 가장 먼 섬. 목포항에서 하루 단 한 번 여객선이 다니는데 쾌속선으로도 3시간이나 걸리는 뱃길이다.
태도는 해태가 많이 나는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도 섬 지역에서는 김을 해태라 한다. 상·중·하태도, 고만고만한 세 개의 작은 섬은 바로 이웃해 있다. 흑산도에서 가까운 섬이 상태도인데 주민등록상 46가구 99명, 그중 가장 작은 섬은 중태도인데 11가구 25명이 산다. 하태도는 세 섬 중 가장 크고 출장소와 학교, 보건소 등 행정기관이 있는 중심 섬이다. 크다고 해봐야 80가구 150명이다. 상태도와 중태도는 5분 거리고 하태도는 20분 거리다.
상태도 선착장엔 노동 열사의 동상이…

상태도 선착장에는 흉상 하나가 서 있다. 이 섬에서 태어난 독립투사일까. 그도 아니면 섬을 위해 크게 기여한 어느 유지의 동상일까. 아니다. 놀랍게도 노동열사의 동상이다. 이용석 열사. 더 놀라운 것은 동상을 세운 주체가 신안군수란 사실이다. 2013년 6월 13일 신안군수 박우량. 섬들로만 이뤄진 작은 군의 군수가 대놓고 노동열사의 동상을 세워주다니. 그 배짱이 놀랍고 그 헤아림이 고맙다. 인구 50명도 채 못 되는 작은 섬에 표를 보고 세웠을 리가 만무하다. 뜻이 없이 어찌 세웠겠는가.
머나먼 낙도가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상·중·하태도 세 섬의 가운데 있어서 얻은 이름이 중태도다. 세 섬 중 가장 작다. 평지가 없어서 비탈진 언덕에 몇 채의 집이 옹색하게 들어앉아 있지만 마을 안에 들어서니 섬은 더없이 편안하다. 주민들은 겨울이면 대부분 뭍의 자식들에게 가서 살다 온다. 바닷일이 없는 때를 이용해 긴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머나먼 낙도의 외로움을 그렇게라도 자식들을 만나며 견뎌야 섬살이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일 터다. 봄에는 갯바위에 붙은 돌김을 채취해 말려서 팔고 여름이면 톳이나 미역,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해 살아간다. 마침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커피를 내오시며 고맙다고 하신다. 무엇이 고마울까. 대접받는 나그네가 고마울 따름인 것을.
“초대를 해도 오시라 해도 안 오실 텐데 감사합니다.” 안주인이 거듭 머리를 조아린다. 아! 이런 황송할 데가 있을까. 나그네를 환대하는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울컥한다.
“이 집이 젤 꼭대기여도 참 좋아요. 아침에 보면 동쪽에서 물 위로 해가 떠오른 걸 볼 수 있어요. 해가 바로 올라와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일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섬 집. 매일 보는 일출도 늘 새로운 섬 집. 섬에서의 삶은 또 그렇게 지속된다.
■강제윤 시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