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셜 AD로 '나'를 홍보한 뒤러…500년 前 '짝퉁과의 전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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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그리스도 이미지로 자부심 표현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그리스도 이미지로 자부심 표현
미국의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는 21세기에 꼭 필요한 성공 전략으로 퍼스널브랜드를 꼽는다. 개인이 가진 실력, 가치, 강점을 활용해 ‘나’ 자신을 기업이나 상품처럼 브랜드화하는 것이 퍼스널브랜드다. 그런데 자기경영의 핵심인 퍼스널브랜드의 원조는 놀랍게도 예술가였다.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rer·1471~1528)가 최초의 퍼스널브랜드였다. 예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화상 중 하나로 꼽히는 뒤러의 걸작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이 그런 사실을 증명해준다.
뒤러는 이 자화상에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세 가지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모노그램(두 개 이상의 글자를 조합한 기호나 로고)을 자화상에 새겨 진품임을 보증하는 한편 브랜드 가치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림의 배경 왼편 위 금색 물감으로 새겨진 AD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름과 성의 첫 글자를 딴 서명이자 ‘주님의 해’를 뜻하는 라틴어 ‘아노 도미니(Anno Domoni)’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로, 이중적 의미를 지녔다.
AD 위에 있는 1500은 작품의 제작연도이자 서양문명사의 대전환기인 1500년을 가리키는 숫자로, 역시 이중적 의미를 가졌다. 뒤러는 서명 AD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연도인 서기 AD를 연결하고, 작품의 제작연도와 근대문명이 시작되는 1500년을 일치시켜 이름값과 작품 가치를 극대화했다.
둘째, 미술사에서 최초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연출해 신격화했다. 그림 속 뒤러는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정면 자세를 취했다. 그의 머리 가운데를 중심축으로 양어깨에 가상의 선을 그으면 좌우대칭과 삼각형 구도가 형성돼 안정감, 통일감, 균형감이 생겨난다. 모피 깃을 만지는 뒤러의 오른손은 성화 속 그리스도가 축복의 기도를 할 때의 손동작과 닮았다.
정면 자세, 좌우대칭, 삼각형 구도, 축복의 표시는 중세 이후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그리스도의 이상화된 도상(아이콘)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뒤러는 성상으로 연출한 자화상으로 자신이 신처럼 위대한 존재라고 만천하에 홍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명과 대칭을 이루는 배경에 금색 물감으로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지울 수 없는 색채로 자신을 그렸다”라고 이름, 출신지, 나이까지도 보란 듯 작품에 새겼다. 이는 예술가가 스스로 창작 행위에 대한 경의를 표한 최초의 사례에 해당한다.
셋째, 뒤러는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고품격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실제로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인데도 황금사슬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갈색 헤어스타일과 왁스로 멋을 낸 콧수염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시 이탈리아 상류 계층에서 유행한 담비털로 장식된 세련되고 사치스러운 코트 차림의 최신 패션도 선보였다.
뒤러의 조국인 독일에서 손으로 일하는 화가는 장인, 기술자로 분류됐고 신분도 낮았다. 그러나 그는 최고급 명품을 소유한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해 일개 수공업자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지위, 재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차별화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조지프 코어너는 이 자화상의 의미에 대해 “예술가의 초상화와 하느님의 숭배심을 결합한 작품으로, 16세기 초에 등장한 개인 저작권의 혁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뒤러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브랜딩의 개념을 도입한 계기는 무엇일까?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당시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대여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뒤러의 작품을 베껴 이득을 취하려는 위조꾼들이 들끓었다. 미국의 미술감정가 토머스 호빙에 따르면 뒤러 생전에 이미 5000여 점의 가짜 작품이 유통될 정도로 엄청나게 위조됐다.
참다못한 뒤러는 독특한 모노그램 서명을 작품에 새겨 짝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심지어 뒤러는 1506년께 자신의 판화와 서명을 위조하고 유통시킨 이탈리아 유명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와 달 에수스 출판사를 상대로 베네치아에서 법적 소송을 벌여 승소하기도 했다. 미술저작권의 현대적 개념이 탄생하는 역사적 소송이었다.
퍼스널브랜드의 탄생을 알린 이 자화상은 인류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리처드 브랜슨, 오프라 윈프리 등 자신만의 차별화된 개인브랜드로 자산적 가치를 높인 세계적 명사들이 뒤러의 후예들이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
뒤러는 이 자화상에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세 가지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모노그램(두 개 이상의 글자를 조합한 기호나 로고)을 자화상에 새겨 진품임을 보증하는 한편 브랜드 가치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림의 배경 왼편 위 금색 물감으로 새겨진 AD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름과 성의 첫 글자를 딴 서명이자 ‘주님의 해’를 뜻하는 라틴어 ‘아노 도미니(Anno Domoni)’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로, 이중적 의미를 지녔다.
AD 위에 있는 1500은 작품의 제작연도이자 서양문명사의 대전환기인 1500년을 가리키는 숫자로, 역시 이중적 의미를 가졌다. 뒤러는 서명 AD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연도인 서기 AD를 연결하고, 작품의 제작연도와 근대문명이 시작되는 1500년을 일치시켜 이름값과 작품 가치를 극대화했다.
둘째, 미술사에서 최초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연출해 신격화했다. 그림 속 뒤러는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정면 자세를 취했다. 그의 머리 가운데를 중심축으로 양어깨에 가상의 선을 그으면 좌우대칭과 삼각형 구도가 형성돼 안정감, 통일감, 균형감이 생겨난다. 모피 깃을 만지는 뒤러의 오른손은 성화 속 그리스도가 축복의 기도를 할 때의 손동작과 닮았다.
정면 자세, 좌우대칭, 삼각형 구도, 축복의 표시는 중세 이후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그리스도의 이상화된 도상(아이콘)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뒤러는 성상으로 연출한 자화상으로 자신이 신처럼 위대한 존재라고 만천하에 홍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명과 대칭을 이루는 배경에 금색 물감으로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지울 수 없는 색채로 자신을 그렸다”라고 이름, 출신지, 나이까지도 보란 듯 작품에 새겼다. 이는 예술가가 스스로 창작 행위에 대한 경의를 표한 최초의 사례에 해당한다.
셋째, 뒤러는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고품격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실제로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인데도 황금사슬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갈색 헤어스타일과 왁스로 멋을 낸 콧수염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시 이탈리아 상류 계층에서 유행한 담비털로 장식된 세련되고 사치스러운 코트 차림의 최신 패션도 선보였다.
뒤러의 조국인 독일에서 손으로 일하는 화가는 장인, 기술자로 분류됐고 신분도 낮았다. 그러나 그는 최고급 명품을 소유한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해 일개 수공업자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지위, 재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차별화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조지프 코어너는 이 자화상의 의미에 대해 “예술가의 초상화와 하느님의 숭배심을 결합한 작품으로, 16세기 초에 등장한 개인 저작권의 혁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뒤러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브랜딩의 개념을 도입한 계기는 무엇일까?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당시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대여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뒤러의 작품을 베껴 이득을 취하려는 위조꾼들이 들끓었다. 미국의 미술감정가 토머스 호빙에 따르면 뒤러 생전에 이미 5000여 점의 가짜 작품이 유통될 정도로 엄청나게 위조됐다.
참다못한 뒤러는 독특한 모노그램 서명을 작품에 새겨 짝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심지어 뒤러는 1506년께 자신의 판화와 서명을 위조하고 유통시킨 이탈리아 유명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와 달 에수스 출판사를 상대로 베네치아에서 법적 소송을 벌여 승소하기도 했다. 미술저작권의 현대적 개념이 탄생하는 역사적 소송이었다.
퍼스널브랜드의 탄생을 알린 이 자화상은 인류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리처드 브랜슨, 오프라 윈프리 등 자신만의 차별화된 개인브랜드로 자산적 가치를 높인 세계적 명사들이 뒤러의 후예들이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