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1400살 불상의 미소…번뇌가 눈 녹듯 사라지네
어느덧 극락에 온 것일까. 사바(娑婆)세계의 온갖 번뇌와 고통을 눈 녹듯 잊게 할 미소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1400년 전 차디찬 금속으로 빚어진 불상에서 세파에 찌든 현대인을 위로하는 따뜻한 온기가 은은하게 전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손꼽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6년 만에 한자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 2층에 국보 반가사유상을 위해 별도로 조성한 439㎡ 규모의 ‘사유의 방’을 12일 공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두 반가사유상을 상설전 형태로 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5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한 두 반가사유상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와 같은 한국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의지가 담겼다. 지금까지는 반가사유상이 한 점씩 번갈아 전시됐고, 특별전 기간에만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반가사유상이 독립된 공간에서 한시적으로나마 함께 전시된 것은 1986년과 2004년, 2015년 ‘고대불교조각대전’ 등 세 차례에 불과했다.

박물관이 건축가 최욱(원오원 아키텍스 대표)과 협업해 꾸민 ‘사유의 방’은 기존의 관람 동선에서 벗어난 별도 공간이다. 여기서 두 반가사유상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나란히 앞을 응시한다. 유리 진열장이 없어 불상의 아름다운 자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사방에서 불상을 볼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1400살 불상의 미소…번뇌가 눈 녹듯 사라지네
불상의 크기와 모양에 맞춰 정밀하게 비추는 빛 아래서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한층 돋보이도록 했다. 배우의 섬세한 표현, 속눈썹 떨림까지 보이는 소극장 크기로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어두운 진입로, 미세하게 기운 전시실 바닥과 벽, 수많은 빛으로 몽환적 느낌을 주는 천장이 정좌한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반가사유상과 어우러져 탈속(脫俗)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소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반가사유상 전시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자 했다”며 “두 불상의 예술성과 조형미를 온전히 표출할 수 있도록 조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반가부좌)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듯한 불상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세속과 탈속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한 데서 시작했다. 어지러운 현실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미래의 구원자 미륵보살의 모습이 후대에 가미됐다. 남아시아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고대 한반도에서 많이 조성됐다.

국보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 반가사유상은 모두 삼국시대인 6∼7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조 기술이 뛰어나고 조형성이 탁월해 국내 반가사유상 중 백미로 평가된다. 특히 일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일본 국보인 반가사유상(목조)이 중앙박물관 소장 반가사유상과 형태나 구도, 의상 등이 유사해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다. 한국의 반가사유상은 손가락이 얼굴에 붙어 있고 일본 것은 떨어져 있다.

日 고류지 반가사유상
日 고류지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의 두 반가사유상은 본래 국보 제78호와 제83호로 불렸으나,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 번호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유물번호 외에 두 불상을 구분할 호칭이 사라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9월까지 두 반가사유상의 애칭을 공모했으나 대상 수상작을 뽑지는 않았다. 금상은 ‘반디’와 ‘반야’, ‘해아림’과 ‘별아림’, ‘금비’와 ‘신비’로 정해졌다.

‘사유의 방’은 언제든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나, 관람객이 몰리면 입장이 제한될 수도 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반가사유상은 생로병사와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상징하는 한편 깨달음의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역동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면서 “코로나를 딛고 나아가려는 이때 국민이 사유의 방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