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노화백 "내 최고 작품? 아직 안나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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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랑 개관 45주년 기념
곽훈 개인전 '할라잇'
독자적 화풍…국가대표급 작가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서
처음 연 한국관의 대표 작가로
전 세계서 전시 요청 쇄도했지만
"똑같은 히트곡 안부른다" 거절
곽훈 개인전 '할라잇'
독자적 화풍…국가대표급 작가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서
처음 연 한국관의 대표 작가로
전 세계서 전시 요청 쇄도했지만
"똑같은 히트곡 안부른다" 거절
세계에서 통하는 ‘한국적 그림’은 뭘까. 한국 현대미술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1950~1960년대에는 한국식 앵포르멜(비정형의 추상미술), 1960년대 후반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아방가르드 미술, 1970년대엔 ‘선비 정신’의 단색화, 1980년대엔 시대의 아픔을 다룬 민중미술이 유행했다. 박서보·하종현·정상화(앵포르멜→단색화), 이건용(아방가르드), 황재형(민중미술) 등 현재 ‘대가’로 불리는 화가들은 이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곽훈 화백(81)은 예외다. 그의 그림은 더없이 한국적이다. 해외 미술계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조류와 동떨어져 있다. 프랑스 도멘 드 케르게넥 미술관의 올리비에 들라발라드 관장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동년대 작가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갖고 있는 드문 작가다. 그의 그림은 한국 고유의 문명에 천착하면서도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곽훈은 서울대 미대를 나와 미술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한때 ‘아방가르드 미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1975년 미국 이민을 택했다. 이민 초기엔 광고 회사에서 전람회용 그림을 그렸다. “대학 신입생 때 4·19혁명이 터지는 바람에 미술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회사에 들어와 보니 한국에선 구경도 못했던 재료들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여러 재료를 써보고 혼자 기법도 개발하다 보니 미술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제 그림엔 ‘족보’가 없어요.”
다시 붓을 잡자 고향 생각이 났다. 도자기와 가야 토기 등 한국의 물건을 그리다 한(恨)과 샤머니즘 등 한국적 정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품 활동을 재개한 지 얼마 안 돼 LA시립미술관장이던 조신 양코의 눈에 들어 전시회(1981년)를 열었고, 빠르게 현지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한국도 그를 ‘국가 대표’로 인정했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처음 생길 때 대표 작가로 선정한 것. 비엔날레에서 그가 선보인 항아리와 소나무, 비구니를 동원한 퍼포먼스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우리 미술관에서도 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쳐 해외 전시만 수십 번 했어요. 계속 하다가 지겨워서 관뒀습니다. 똑같은 히트곡만 부르는 가수가 오래 못가듯이 화가도 똑같은 것만 그리면 도태됩니다.”
곽훈이 2018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할라잇(Halaayt)’ 연작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고래잡이를 모티브로 한 반추상화로, 할라잇은 이누이트(에스키모) 말로 ‘신의 강림’을 뜻한다.
“30여 년 전 미국 알래스카를 여행하다 해변가에서 고래 뼈 더미를 봤어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고래 사냥을 하는 이누이트들의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그러다 10여 년 전 울산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보고 영감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동경, 애니미즘 등 인류 보편의 정서가 고래잡이에 모두 담겨 있더군요.”
할라이트 연작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뜸 “이제 이 그림도 슬슬 지겨워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작업실에 온 사람들에게 항상 ‘언제적 작품이 가장 좋냐’고 묻는데, 사람들이 ‘최근 작품일수록 더 좋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좋아요. 앞으로 또 새로운 그림을 해봐야죠. 내 최고의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내 인생 최고의 나날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곽훈 화백(81)은 예외다. 그의 그림은 더없이 한국적이다. 해외 미술계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조류와 동떨어져 있다. 프랑스 도멘 드 케르게넥 미술관의 올리비에 들라발라드 관장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동년대 작가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갖고 있는 드문 작가다. 그의 그림은 한국 고유의 문명에 천착하면서도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화가는 똑같은 것 하면 도태돼”
서울 인사동 선화랑이 개관 45주년을 맞아 연 ‘곽훈 개인전’은 그의 40년 작품세계를 망라한 전시다. 신작 20여 점을 비롯해 총 5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김창실 전 회장이 34년간 화랑을 운영하면서 가장 아낀 작가”라고 했다.곽훈은 서울대 미대를 나와 미술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한때 ‘아방가르드 미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1975년 미국 이민을 택했다. 이민 초기엔 광고 회사에서 전람회용 그림을 그렸다. “대학 신입생 때 4·19혁명이 터지는 바람에 미술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회사에 들어와 보니 한국에선 구경도 못했던 재료들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여러 재료를 써보고 혼자 기법도 개발하다 보니 미술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제 그림엔 ‘족보’가 없어요.”
다시 붓을 잡자 고향 생각이 났다. 도자기와 가야 토기 등 한국의 물건을 그리다 한(恨)과 샤머니즘 등 한국적 정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품 활동을 재개한 지 얼마 안 돼 LA시립미술관장이던 조신 양코의 눈에 들어 전시회(1981년)를 열었고, 빠르게 현지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한국도 그를 ‘국가 대표’로 인정했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처음 생길 때 대표 작가로 선정한 것. 비엔날레에서 그가 선보인 항아리와 소나무, 비구니를 동원한 퍼포먼스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우리 미술관에서도 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쳐 해외 전시만 수십 번 했어요. 계속 하다가 지겨워서 관뒀습니다. 똑같은 히트곡만 부르는 가수가 오래 못가듯이 화가도 똑같은 것만 그리면 도태됩니다.”
“계속 변신하겠다, 기대하시라”
그의 끝없는 변신은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 연작은 1980년대에 큰 인기를 구가했던 작품들이다. 만물이 각자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동양적 사상을 표현한 추상화다. 1990년대 ‘겁’ 연작은 광물성 재료를 두껍게 바르고 긁어내 세월의 흐름을 표현했다.곽훈이 2018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할라잇(Halaayt)’ 연작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고래잡이를 모티브로 한 반추상화로, 할라잇은 이누이트(에스키모) 말로 ‘신의 강림’을 뜻한다.
“30여 년 전 미국 알래스카를 여행하다 해변가에서 고래 뼈 더미를 봤어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고래 사냥을 하는 이누이트들의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그러다 10여 년 전 울산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보고 영감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동경, 애니미즘 등 인류 보편의 정서가 고래잡이에 모두 담겨 있더군요.”
할라이트 연작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뜸 “이제 이 그림도 슬슬 지겨워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작업실에 온 사람들에게 항상 ‘언제적 작품이 가장 좋냐’고 묻는데, 사람들이 ‘최근 작품일수록 더 좋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좋아요. 앞으로 또 새로운 그림을 해봐야죠. 내 최고의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내 인생 최고의 나날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