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홍대 미대 '앙팡테리블' 3인, 프리즈서 세계인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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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ZE SEOUL
'한국 컨템퍼러리 미술' 알린
파격의 아티스트 최정화·이불·이동기
'한국 컨템퍼러리 미술' 알린
파격의 아티스트 최정화·이불·이동기
1980년대의 홍익대 미술대학은 추상 회화가 주류였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 등이 교수진이었고, 학생의 90% 이상은 추상화에 몰입했다. 학교 밖도 그랬다. 사회상을 반영한 민중미술과 추상미술이 미술계의 두 갈래였다.
하지만 예술은 항상 ‘남과 다른 생각을 한 이들의 것’이 아니던가. 그때도 있었다. 파격과 광기의 예술을 선보이며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불리던 홍대 미대 1980년대 학번들. 파격적인 실험미술을 선보이며 ‘한국의 컨템퍼러리 미술’의 시작을 알린 소그룹 ‘뮤지엄’의 주역 최정화(1961년생·홍대 회화과), 이불(1964년생·조소과), 나홀로 팝아트에 심취했던 이동기(1967년생·회화과)가 그렇다.
이들은 세계 미술 시장이 환호하는 한국 대표 현대미술가들로 우뚝 섰다. 세 명의 예술가는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2를 맞아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에게 베일에 가려졌던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자신의 작품들로 ‘예술 놀이터’를 만들었다.
이불 작가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일본 모리미술관,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 독일 그로피우스바우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과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으며 ‘동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예술가’로 우뚝 섰다.
그의 스튜디오는 좀처럼 공개된 적이 없다. 기상천외한 대형 설치 작품과 알 수 없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제작했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지난달 31일 이불 작가는 뉴욕과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SIA) 석사 과정의 다국적 학생들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했다. 장소는 경기 일산의 한 테크노밸리. 어지럽게 드나드는 물류차들 사이로 그의 스튜디오가 보였다. 천장엔 그간 작업했던 설치 작품이 와이어에 매달려 있고, 한쪽엔 회화와 조소 작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공구들 사이엔 역사적 작품들이 놓여져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나의 이야기는 전부 연결돼 있어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언제나 힘들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죠.”
이불 작가의 결과물은 3차원(3D) 프린터나 최첨단 기계로 만든 것처럼 매끈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엔 기계가 없다. 그는 “내 작품이 하이테크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기술만 사용한다”고 했다.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재료들을 탐구해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전통 조각의 재료가 아니라 직물, 섬유, 머리카락, 자개, 유리 등이 사용된다. 진짜 피부 같은 질감도, 기계가 만들어낸 것 같은 갑옷도 다 손으로 제작했다.
세 개 작업실 중 하나엔 그의 평면 시리즈 ‘퍼듀(Perdu)’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판에 아크릴 페인트, 자개, 돌가루를 여러 겹 축적하고 갈아내고 다시 칠하는 과정이 수십 번 반복돼 회화와 조각의 중간 단계인 ‘입체 회화’로 완성된다.
“설치와 조각은 설계도를 갖고 결과물을 완전히 예상하지만 퍼듀는 연마 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몰라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90분간의 투어가 끝나자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어메이징(놀랍다)”을 외쳤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치 예술가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고, 그 실험을 40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최 작가는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탈바꿈한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생활활’이다. 생활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생활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MCM하우스를 전시공간으로 택했다. 옷을 파는 상업공간 안에 밥그릇, 쌀되, 한옥을 짓다 남은 나무 등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해 ‘의식주’를 한 공간에 구현했다.
조용히 감상만 하는 고상한 전시회가 아니다. 그는 누구나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작품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예술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MCM하우스의 지하 1층은 그런 철학이 응축된 공간이다. 커피 테이블과 스툴은 모두 그가 제작한 작품. 끊임없이 돌아가는 미러볼을 탑처럼 쌓은 ‘눈이 부시게 하찮은’(2019년)도 전시됐다.
“럭셔리한 것과 촌스러운 것은 동전의 양면일 뿐 아니겠어요. 예술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 모든 소품이 예술이 될 수 있죠.” 프리즈 서울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문화예술계 인사뿐 아니라 국내 ‘예술 초보자’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게 그의 목표다.
홍익대 미대 87학번인 그는 중앙미술대전에선 회화 작품으로 1986~1987년 두 해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직후 최 작가는 회화가 아닌, 건축과 설치 예술 등으로 노선을 바꿨다. ‘캔버스에 한정되지 않고 진짜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생활 속에 예술을 스며들게 하는 최 작가의 힘은 세계를 매료시켰다. 영국 런던의 대형 아트센터 코로넷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아 페스티벌: 범 내려온다’ 전시의 일환으로 그는 극장 외벽을 거대한 딸기, 수박으로 장식했다. 오는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축구공과 밥그릇, 솥으로 만든 12m짜리 거대 조형물을 선보인다. MCM하우스 전시는 9월 30일까지.
30년 넘게 아토마우스 캐릭터를 진화시키고 있는 이 작가는 “반복적으로 입력돼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캐릭터를 살아 있는 인물처럼 만들고 싶었다”며 “세계 각국의 언어, 추상회화 등과 만나 절충의 예술을 구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하지만 예술은 항상 ‘남과 다른 생각을 한 이들의 것’이 아니던가. 그때도 있었다. 파격과 광기의 예술을 선보이며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불리던 홍대 미대 1980년대 학번들. 파격적인 실험미술을 선보이며 ‘한국의 컨템퍼러리 미술’의 시작을 알린 소그룹 ‘뮤지엄’의 주역 최정화(1961년생·홍대 회화과), 이불(1964년생·조소과), 나홀로 팝아트에 심취했던 이동기(1967년생·회화과)가 그렇다.
이들은 세계 미술 시장이 환호하는 한국 대표 현대미술가들로 우뚝 섰다. 세 명의 예술가는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2를 맞아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에게 베일에 가려졌던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자신의 작품들로 ‘예술 놀이터’를 만들었다.
베일 벗은 이불의 일산 스튜디오
미술관에서 썩은 생선의 냄새를 맡게 하고(1991년), 나체로 천장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낙태를 이야기하며(1989년), 괴물 의상을 입고 도쿄의 도로를 돌아다니던(1990년) 작가 이불. 억압된 여성의 몸에 집중해온 그는 사이보그 조각으로 인간과 기술과 몸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얘기했다. 하이테크가 지배한 세상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기술의 불완전함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끊임없이 각성을 요구했다.이불 작가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일본 모리미술관,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 독일 그로피우스바우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과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으며 ‘동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예술가’로 우뚝 섰다.
그의 스튜디오는 좀처럼 공개된 적이 없다. 기상천외한 대형 설치 작품과 알 수 없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제작했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지난달 31일 이불 작가는 뉴욕과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SIA) 석사 과정의 다국적 학생들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했다. 장소는 경기 일산의 한 테크노밸리. 어지럽게 드나드는 물류차들 사이로 그의 스튜디오가 보였다. 천장엔 그간 작업했던 설치 작품이 와이어에 매달려 있고, 한쪽엔 회화와 조소 작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공구들 사이엔 역사적 작품들이 놓여져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나의 이야기는 전부 연결돼 있어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언제나 힘들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죠.”
이불 작가의 결과물은 3차원(3D) 프린터나 최첨단 기계로 만든 것처럼 매끈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엔 기계가 없다. 그는 “내 작품이 하이테크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기술만 사용한다”고 했다.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재료들을 탐구해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전통 조각의 재료가 아니라 직물, 섬유, 머리카락, 자개, 유리 등이 사용된다. 진짜 피부 같은 질감도, 기계가 만들어낸 것 같은 갑옷도 다 손으로 제작했다.
세 개 작업실 중 하나엔 그의 평면 시리즈 ‘퍼듀(Perdu)’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판에 아크릴 페인트, 자개, 돌가루를 여러 겹 축적하고 갈아내고 다시 칠하는 과정이 수십 번 반복돼 회화와 조각의 중간 단계인 ‘입체 회화’로 완성된다.
“설치와 조각은 설계도를 갖고 결과물을 완전히 예상하지만 퍼듀는 연마 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몰라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90분간의 투어가 끝나자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어메이징(놀랍다)”을 외쳤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치 예술가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고, 그 실험을 40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청담동에 ‘예술놀이터’ 만든 최정화
서울 청담동 MCM하우스 앞. 놋그릇 냄비 프라이팬 등이 서로 붙은 채 거대한 무한대 기호(∞)를 그리고 있다. 럭셔리의 ‘성지’인 청담동과 어울리지 않는, 녹슬고 손때 묻은 그릇이 만든 뫼비우스의 띠. 국내 대표 설치예술가 최정화 작가의 작품이다.최 작가는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탈바꿈한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생활활’이다. 생활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생활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MCM하우스를 전시공간으로 택했다. 옷을 파는 상업공간 안에 밥그릇, 쌀되, 한옥을 짓다 남은 나무 등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해 ‘의식주’를 한 공간에 구현했다.
조용히 감상만 하는 고상한 전시회가 아니다. 그는 누구나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작품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예술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MCM하우스의 지하 1층은 그런 철학이 응축된 공간이다. 커피 테이블과 스툴은 모두 그가 제작한 작품. 끊임없이 돌아가는 미러볼을 탑처럼 쌓은 ‘눈이 부시게 하찮은’(2019년)도 전시됐다.
“럭셔리한 것과 촌스러운 것은 동전의 양면일 뿐 아니겠어요. 예술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 모든 소품이 예술이 될 수 있죠.” 프리즈 서울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문화예술계 인사뿐 아니라 국내 ‘예술 초보자’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게 그의 목표다.
홍익대 미대 87학번인 그는 중앙미술대전에선 회화 작품으로 1986~1987년 두 해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직후 최 작가는 회화가 아닌, 건축과 설치 예술 등으로 노선을 바꿨다. ‘캔버스에 한정되지 않고 진짜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생활 속에 예술을 스며들게 하는 최 작가의 힘은 세계를 매료시켰다. 영국 런던의 대형 아트센터 코로넷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아 페스티벌: 범 내려온다’ 전시의 일환으로 그는 극장 외벽을 거대한 딸기, 수박으로 장식했다. 오는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축구공과 밥그릇, 솥으로 만든 12m짜리 거대 조형물을 선보인다. MCM하우스 전시는 9월 30일까지.
‘아토마우스’ 만든 1세대 팝아티스트 이동기
만화 속 캐릭터가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건 요즘엔 흔한 일이다. 1980년대엔 그렇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이동기 작가는 당시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쳐 흑백의 ‘아토마우스’를 만들었다. 화단에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또 그렸다. 만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와 수천 번씩 채색해 국내 팝아트 1세대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그의 작품은 이제 일본인들이 더 열광한다.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선 ‘국수를 먹는 아토마우스’가 1만5600달러(약 21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제이홉의 솔로 앨범 ‘치킨 누들 수프’ 표지도 그의 작품. 그는 프리즈 서울 2022를 맞아 서울 문래동에 있는 스튜디오를 미술 컬렉터와 해외 VIP들에게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이수화학의 본사인 서울 방배동 스페이스이수에서 개인전도 열고 있다.30년 넘게 아토마우스 캐릭터를 진화시키고 있는 이 작가는 “반복적으로 입력돼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캐릭터를 살아 있는 인물처럼 만들고 싶었다”며 “세계 각국의 언어, 추상회화 등과 만나 절충의 예술을 구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