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역사 영국 유명 갤러리 대표
데이비드 호크니가 전속 작가
1982년 이우환과 인연 맺으면서
한국 단색화 작가들 꾸준히 소개
'프리즈 마스터스' 권영우作 출품
런던 시내에 별도 개인전도 개최
최근 흑인·여성 작품 유행 경계
"갤러리가 오랫동안 생존하려면
작가 배경 아닌 작품만 바라봐야"
이곳에서 ‘종이의 화가’로 불리는 한국 작가 고(故) 권영우(1923~2006)를 만났다. 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66년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애널리주다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덕분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런던에 자리잡은 ‘잘나가는’ 갤러리가 어쩌다 아시아 끝자락에 있는 ‘미술 변방’의 작가에 끌렸을까.
행사장에서 만난 데이비드 주다 애널리주다갤러리 대표는 “40년 전 만난 이우환 화백이 나를 한국 일본 등 아시아로 이끌었다”고 했다. 애널리주다갤러리는 프리즈와 별도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9일까지 갤러리 3층에서 권영우 개인전을 열고 있다. 권영우는 붓과 먹 대신 칼과 송곳으로 현대인의 아픔과 상처를 그린 작가다. 화선지를 겹쳐 바른 뒤 뜯고, 뚫고, 찢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1980년대 무제 시리즈 등이 전시됐다.
애널리주다갤러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1990년대부터 전속 작가로 둔 갤러리다. 러시아 구성주의, 네덜란드 신조형주의, 독일 바우하우스 등 해외의 신조류를 런던에 소개한 갤러리이기도 하다. 바실리 칸딘스키, 피터르 몬드리안,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이우환, 사이토 요시시게, 가와마타 다카시 등이 그랬다.
“어머니(애널리 주다)가 1956년부터 갤러리 일을 시작했고, 저는 1967년 합류했어요. 우리는 작가의 명성이나 출신 지역은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니까요.”
유대인인 그의 어머니는 19세가 되던 1933년에 독일을 떠나 런던으로 왔다. 예술사업을 지원하는 일을 맡으며 미술에 눈뜬 그는 잭슨 폴록 등 미국 추상화가 작품을 영국에 들여오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예술가들과 맺은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걸로도 유명하다. 호크니와는 1970년대, 이우환과는 1980년대에 첫 만남을 가졌다.
“1983년 이우환 전시회를 앞두고 그의 일본 가마쿠라 작업실에 갔어요. 하필 그때 태풍이 와서 모든 게 엉망이 됐습니다. 그림도 망가지고, 차는 물론 도로도 파손되고…. 오도가도 못하는 저를 그의 여덟 살 손녀가 스쿨버스에 태워서 기차역까지 바래다줬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렇게 맺은 이우환과의 인연은 전광영 전시회(2006년)와 권영우 전시회 등으로 넓어졌다. “저는 오로지 작품만 봅니다. ‘미술 여행’을 다니다가 좋은 작품을 만나면 전시회를 여는 식이죠. 한국 작가들은 한국적 정신을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종이란 재료는 그 어느 나라보다 창의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트렌드를 발 빠르게 소개해온 주다 대표는 작품이 아닌 ‘여성 작가’ ‘흑인 작가’ 등 작가의 출신을 흥행 요소로 생각하는 요즘 미술가 분위기가 마뜩잖다고 했다. 그는 “갤러리가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작품 그 자체를 봐야 한다”며 “여성 작가가 뜬다고, 아시아가 대세란 이유로 이런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예술가들을 갤러리가 띄우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런던=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