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보국' 박영사 70년…책의 도시에 심은 미술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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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사 창립 70주년 기념전
갤러리박영 '두레문화'
창업주 "문화가 곧 힘" 소신 따라
출판사 이어 15년 전 갤러리 세워
하이라이트는 '고미술품 컬렉션'
안중근 유묵 탁본도 함께 전시
파주 예술 구심점 된 갤러리박영
소규모갤러리·작가들 둥지 틀어
인근엔 예술인 300여명 작업실
갤러리박영 '두레문화'
창업주 "문화가 곧 힘" 소신 따라
출판사 이어 15년 전 갤러리 세워
하이라이트는 '고미술품 컬렉션'
안중근 유묵 탁본도 함께 전시
파주 예술 구심점 된 갤러리박영
소규모갤러리·작가들 둥지 틀어
인근엔 예술인 300여명 작업실
출판보국(出版報國: 출판으로 나라에 보답한다). 한반도가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 1952년, 안원옥은 대중문화사를 세우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주변에선 “전쟁통에 무슨 출판사냐”고 했지만, 국민이 책을 통해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쌓지 않으면 전쟁이 끝나도 희망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문화가 곧 힘’이라는 안원옥 회장의 믿음은 출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2년 뒤 출판사 이름을 박영(博英)으로 바꿨다.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이름에 걸맞게 가난한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가업을 이은 안종만 회장은 한술 더 떴다. 신진 작가를 돕겠다며 파주출판단지에 갤러리를 세웠다. 최근 창립 15주년을 맞은 갤러리박영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래서일까. 박영사 창립 70주년전은 기업 역사만 줄줄이 읊는 통상의 기념전과 달리 대신 박영가(家)의 ‘예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꾸몄다. 하이라이트는 창업주의 고미술품 컬렉션이다. 고종 어진을 그린 궁중화가 심전 안중식부터 서양 화풍의 영향을 받아 실경산수화를 그린 청전 이상범, ‘달마도’로 유명한 연담 김명국까지 전시됐다. 하나같이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안 대표는 “할아버지는 사업이 안 풀릴 때 화가들과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미술과 미술인을 사랑하셨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황금백만량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 황금 백만 냥이 자식 하나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의 탁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910년 3월 그가 중국 뤼순감옥에 갇혀있을 때 자신을 존경하던 일본인 경수계장 나카무라에게 써준 것이다. 원본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박영사의 정체성이 깃든 컬렉션도 있다. 갤러리 안쪽 방에 들어가면 안 회장이 책을 주제로 모은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다. 도서관에 빽빽하게 꽂힌 책을 통해 인류가 이룬 문화사를 사진 한 장에 담은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작품도 있고, 불상 속을 버려진 책들로 채운 대만 예술가 롱빈첸의 작품도 비치돼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책이 소외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이 갖는 의미는 크다는 걸 표현했다.
안 대표는 “갤러리박영이 문을 열자 소규모 갤러리들이 뒤를 이었고, 작가들도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갤러리박영이 파주 예술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파주 예술인 커뮤니티인 파주아트벙커의 멤버 정현 조각가는 “이곳에선 미술, 책, 사진 등 여러 분야 예술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며 “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해외에서 중요한 컬렉터가 오면 파주로 데리고 올 정도로 ‘밀집의 힘’을 보여주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갤러리박영 전시는 2월 1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문화가 곧 힘’이라는 안원옥 회장의 믿음은 출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2년 뒤 출판사 이름을 박영(博英)으로 바꿨다.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이름에 걸맞게 가난한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가업을 이은 안종만 회장은 한술 더 떴다. 신진 작가를 돕겠다며 파주출판단지에 갤러리를 세웠다. 최근 창립 15주년을 맞은 갤러리박영은 이렇게 탄생했다.
안중근 유묵부터 불상 조각까지
경기 파주시 문발동 갤러리박영은 지난달 29일부터 박영사 창립 70주년 기념 특별전 ‘두레문화’를 열고 있다. 박영사는 경제·정치·법률 관련 학술서를 주로 펴내는 중견 출판사다. 안종만 회장의 딸인 안수연 갤러리박영 대표는 “15년 전 개관할 때만 해도 ‘출판단지에 무슨 미술 갤러리냐’는 핀잔을 듣곤 했다”며 “오래 못 갈 것이란 일각의 우려에도 갤러리를 죽 이어올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부터 내려온 ‘예술 사랑 DNA’ 덕분”이라고 말했다.그래서일까. 박영사 창립 70주년전은 기업 역사만 줄줄이 읊는 통상의 기념전과 달리 대신 박영가(家)의 ‘예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꾸몄다. 하이라이트는 창업주의 고미술품 컬렉션이다. 고종 어진을 그린 궁중화가 심전 안중식부터 서양 화풍의 영향을 받아 실경산수화를 그린 청전 이상범, ‘달마도’로 유명한 연담 김명국까지 전시됐다. 하나같이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안 대표는 “할아버지는 사업이 안 풀릴 때 화가들과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미술과 미술인을 사랑하셨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황금백만량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 황금 백만 냥이 자식 하나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의 탁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910년 3월 그가 중국 뤼순감옥에 갇혀있을 때 자신을 존경하던 일본인 경수계장 나카무라에게 써준 것이다. 원본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박영사의 정체성이 깃든 컬렉션도 있다. 갤러리 안쪽 방에 들어가면 안 회장이 책을 주제로 모은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다. 도서관에 빽빽하게 꽂힌 책을 통해 인류가 이룬 문화사를 사진 한 장에 담은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작품도 있고, 불상 속을 버려진 책들로 채운 대만 예술가 롱빈첸의 작품도 비치돼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책이 소외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이 갖는 의미는 크다는 걸 표현했다.
‘예술인 동네’가 된 파주
갤러리박영은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인근에는 화가 조각가 작가 등 300명이 넘는 예술인의 작업실이 모여 있다.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만한 예술가부터 신진 작가까지 지명도와 나이가 다양하다. 국내 대표 단색화가 중 한 명인 김태호 작가도 생전 이곳에 작업실을 뒀다.안 대표는 “갤러리박영이 문을 열자 소규모 갤러리들이 뒤를 이었고, 작가들도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갤러리박영이 파주 예술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파주 예술인 커뮤니티인 파주아트벙커의 멤버 정현 조각가는 “이곳에선 미술, 책, 사진 등 여러 분야 예술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며 “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해외에서 중요한 컬렉터가 오면 파주로 데리고 올 정도로 ‘밀집의 힘’을 보여주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갤러리박영 전시는 2월 1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