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세습과 승계 사이… 과욕이 문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요즘 개신교계의 최대 관심사는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의 목회 대물림, 이른바 ‘교회세습’ 논란이다. 이런 논란이 대두된 건 교회 설립자인 김삼환 원로목사가 2015년 말 담임목사 직에서 은퇴한 후 2년 동안 비어 있던 자리에 지난해 11월 김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취임하면서다. 명성교회의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예장통합)가 2013년 정기총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위임목사나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세습금지법의 정신이 중요하다교단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교단 재판국은 지난달 무기명 투표를 통해 김하나 목사의 승계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교단 헌법은 ‘은퇴하는’ 목사에 대해 세습을 금지했으므로 이미 ‘은퇴한’ 목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단의 헌법위원회도 같은 취지로 법을 해석해 교단 재판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전북 익산 이리신광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예장통합 총회는 지난 11일 헌법위원회의 이 같은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결해 승계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전개 과정을 보면 율법 정신보다 율법 조문의 문자적 해석에 집착하는 율법주의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은퇴한 목사든, 은퇴를 앞둔 목사든 가족이 그 자리를 잇는다면 세습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더구나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가 원로목사로 물러난 이후에도 2년간 후임자 자리를 비워 놓았다.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가 경기 하남에 개척한 새노래명성교회를 맡아서 독립했지만 결국 명성교회로 유턴했다. 두 사람 모두 세습에 반대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터여서 비판은 더욱 거셌고, 청빙결의 무효소송으로 이어졌다.

번다한 말들을 빼고 나면 결국 세습의 가장 큰 동기는 욕심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불가피하다. 물론 가족이 목회를 물려받는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조그만 시골 교회를 물려받는다면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80년 김삼환 목사가 설립한 명성교회는 교인이 10만 명에 달하는 교회다. 권력과 돈의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그동안 서울 강남의 충현교회와 광림교회, 소망교회를 비롯한 대형 교회들의 세습 논란은 개신교계에 큰 상처를 입혔다. 종교계 전체에 대한 불신도 키웠다. 감리교, 예장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 여러 교단이 헌법으로 세습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도 목회를 세습한 교회가 360곳을 넘는다고 한다. 바로 물려주는 전형적인 세습 외에 징검다리 세습, 우회 세습, 합병 후 세습 등 변칙도 다양하다. 세습을 시도한 숫자만큼 존경할 만한 교계 원로도 사라졌다. 당사자가 승계 철회를 선언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욕심을 버려야 퇴장이 아름답다

지역사회를 잘 섬기는 것으로 유명한 서울 구로구 고척교회 조재호 담임목사에겐 소중한 보물이 하나 있다. 이 교회에서 33년 동안 일한 김제건 원로목사가 1993년 담임목사 직에서 물러나며 준 금메달이다. 원래 이 금메달은 은퇴하는 김 목사에게 교인들이 ‘제1대 원로목사’라고 새겨서 준 선물이었다. 김 목사는 이를 후임인 조 목사에게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조 목사가 은퇴할 때 받을 제2의 금메달은 후임에게 주면 좋겠다.” 김 목사는 은퇴 후 1주일 만에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후임 목사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금 모으기를 할 때 결혼반지까지 내놨던 조 목사가 이 메달만큼은 고이 간직하는 이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퇴장과 승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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