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가적 행사들이 많은 해다. 그중에서도 금년 말의 대통령 선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을 다스리려면 우선 자신의 몸가짐을 절도있게 하고,마음가짐을 청렴결백하게 하며,집안의 법도를 바르게 한 뒤 비로소 나라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먼저 자신과 집안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과 같이 대통령 후보들의 신변을 걱정하는 일은 없을 터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국민과 나라를 어떻게 부강하게 하는가'하는 정책토론이 우선돼야 하는데,현실은 후보신상을 공격하는 일이 잦다. 또 대통령 임기 중인데도 가족과 친족이 관련된 부정의혹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은 국민단합을 위해 좋은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대통령 자신과 주변의 청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다는 공약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확고한 통치이념이 있어야 하고,이를 명확하게 밝혀서 국민들에게 선택의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 사회적 환경은 많이 변했다.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러한 환경변화를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안보제일주의나 경제발전 우선주의는 이제 민주화와 복지 향상에 대한 국민적 기대 속에서 퇴색하고 있다. 통치이념에 있어 이런 환경변화는 면밀한 분석의 틀이 없이는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온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국민들에게 환상을 줄 정도로 현란한 것으로서,인기를 얻기에 급급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공약과 마찬가지로 대선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고,국민들 역시 선거만 끝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공약을 선거 전에 평가하고,당선 뒤에 실천상황을 평가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이 없다면 19세기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망하게 한 '페로니즘'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선거 공약 개발에 있어 고려해야 할 조건이 몇가지 있다. 첫째,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를 알아야 한다. 국민들은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의 개혁 중에서 가장 뒤지고 있는 것이 정치개혁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한 '바람'은 기성질서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유권자의 여망에 다름 아니다. 둘째,변화를 한다면 이에 따른 비용을 분석해야 한다. '공약 사항'이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다가 실패한 의약분업 같은 사례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실정을 모르고 한 공약'이라고 깨끗이 승복하는 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데 유리할 것이다. 셋째,과거 정권의 실적을 면밀하게 재평가해서 선택 적용해야 한다. 정당이 달랐다는 이유로,또는 다른 사람이 했다는 이유로 폐기하기 보다 좋은 정책은 계속하는 아량을 보이고,실패한 정책은 계속성의 논리보다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넷째,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대통령이 아니라면,정책 실천은 임기와 여건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 대외환경 변화는 우리에게 종속보다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의 표만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외국 투자자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세계 경제와 함께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 공약을 만들 때에는 만점을 받기 위해 백화점식의 다양한 공약을 내걸 것이다. 그러나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서로 상충되는 공약도 있고,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있다. 공약 작성자들의 한계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리한 공약보다,국민이 느끼고 알아들을 수 있는 공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원한다.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는 우리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새 지도자의 이상과 실천에 대한 평가는 우리들 몫이다. kesopyu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