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과 비방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집권 중 처음 도입돼 그 후 확대 재생산된 교육정책의 악습을 없애겠다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교육 과정에서 경쟁의 원칙을 도려내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육 정책은 1968년 시행된 중학교 평준화로부터 시작됐다. 4년 뒤에는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실시됐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실시된 본고사 폐지,대학 입학 정원의 확대,그리고 대학 졸업정원제 폐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 포퓰리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라지지 않고 지속돼 왔다. 첫째, 평준화 정책과 본고사 폐지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업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학부모들에게는 과외와 학원 수강 등에 드는 사교육비 지출을 줄여줄 것이라고 했다. 대학 입학 정원을 확대하면서는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고급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다. 둘째, 정치적 효과가 있었다. 남미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분배 정책을 통해 결과의 평등을 약속한 반면 우리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교육에 있어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결과의 평등'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환심을 사고자 했다. 이로써 정권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문화에 젖어 있고, 높은 학력이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라고 여기고 있던 국민들이 이를 지지한 것은 당연했다. 셋째, 지지자의 수가 반대자의 수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한 번의 시험이라도 피하고 싶었던 학생들은 대환영이었다. 학부모들도 반겼다. 자식들이 이웃집 아이들과 비교될 일이 적어졌기 때문이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학교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고 대학은 늘어난 입학,재학생들을 통해 보다 많은 등록금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표만을 해바라기처럼 따르는 정치인들이 교육 포퓰리즘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인기 영합식 교육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첫째, 경쟁과 그에 따른 서열화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입시 없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대학 입시는 불가피하다. 대학 입시의 과열을 막기 위해 특정 대학교를 없앤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나머지 대학들 사이에 순위가 매겨질 것이고 보다 상위 대학, 인기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설사 모두 같은 대학 졸업장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졸업생을 기용하는 기업들은 이들 중 옥석을 가려야 한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교육의 평준화가 이뤄지는 꿈 같은 현실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른 나라 국민들과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둘째, 기존의 교육 정책으로는 우리 사회가 장차 필요로 하는 양질의 노동력과 양질의 노동력을 육성할 수 있는 교육을 확보하기 어렵다. 저출산 경향과 노령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현 수준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노동 연령층의 국민 한 사람이 창출해내야 할 부가가치의 양이 크게 많아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무한대의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육 기관들도 처절한 경쟁을 통해 교육 환경과 질의 개선에 보다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한시라도 빨리 '결과의 평등'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으로부터 '기회의 평등'을 제공해 주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경쟁원리 적용에 따라 계층 간 교육기회 불균형이 확대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감면 또는 전액 면제해 줘야 한다. 교육기관 사이,교원들 사이의 경쟁을 독려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사교육의 필요성을 줄여나가고 조기 유학의 수요를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인 교육 포퓰리즘의 청산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과거사 청산을 단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