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7년여의 기이한 연정(聯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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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정신분열증적인 이 여름도 끝나가는 모양이다.
한국은 화끈한 지옥이라더니 어느 하루 조용한 날이 없는 참여정부도 반환점을 돌았다.
좌파라고 해도 좋고,좌파적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런 정치이념은 실은 김대중 정부 후반기로부터 그 연원을 따지는 것이 맞다.
참여정부는 그래서 조금은 억울할 것이다.
굳이 이념의 기준이 싫다면 실학이냐 주자학이냐로 갈래를 타도 좋고,반기업이냐 시장친화냐로 따져도 좋다.
이념의 착종(錯綜)은 차라리 10년 중 5년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편히 하는 방법이다.
한번 빠져든 좌파 함정은 5년 정도로는 벗어나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고….
누구로부터든 자포자기의 넋두리를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것이 권력자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야당과의 연정론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지만 아무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지 못하는 것은 혹시나 숨겨진 독은 없는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연정론이 선거제도 개편론이 되고 급기야는 개헌론으로 둔갑한 다음 대통령 선거를 결선투표제라고 하는 '지역+계급선거'로 연결짓는다면 정치는 협잡과 꼼수가 되고 만다.
사실 연정으로 따지자면 지난 7년여의 경제가 이미 혼란스런 연정 체제였다.
모험주의 좌파와 기회주의 우파의 야합이라 불러 마땅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는 이미 7년 이상을 좌우 극단의 당혹스런 정책들에 지배받아 왔다.
기업 소유권을 해체하려는 일단의 좌파적 운동 그룹이 국제 금융자본의 본거지인 월가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아온 것이야말로 좌우 연정의 위선적 실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월가가 쥐어주는 무기로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일이 마치 신자유주의 정책인 것처럼 교묘하게 덧칠돼 왔다.
때문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은 종종 반기업 정서를 은폐하는 언어유희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내 산업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은행장은 오직 외국계 은행 출신이어야 했고 정작 국내 창업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좌우 합작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달리 표현할 적당한 말이 있겠는가.은행업은 본질에서 면허사업일 뿐이지만 이 업자들이 면허를 밑천으로 증권 보험까지 장악해 들어가는 것을 정부는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조장해왔던 터다. 면허업자들이 전쟁을 거론하며 허풍을 떠는 건 정말 가관이다. 관치금융을 배제한다며 등장했던 그들의 얼굴은 재경부 관리들과 더불어 골프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산업은 어설픈 좌파 몽상가들이,금융은 우파 기회주의 분자들이 분할 통치하는 착종 구조가 벌써 7년여다. 또 그것의 어이없는 결과에 대해선 '지긋지긋한 시장경제'에 책임을 돌리도록 끊임없는 선전전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시장의 실패론'이야말로 이 정권의 유일한 지적 밑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내기업 투자는 봉쇄하고 외국기업엔 무제한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 주기로 든다면 그것을 매판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외국 기업에는 특혜를, 국내 기업에는 족쇄를 채우기로 든다면 그 매판조차 19세기식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정부를 혁신한다면서 큰 정부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면 이는 무지와 과욕의 연정일 테고 공기업을 개혁한다면서 지방으로 강제분산하는 따위는 동쪽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서쪽을 향해 뜀박질하는 어리석음의 연정이다. 전국의 땅값을 다락같이 올려놓고 중산층의 재산세를 급작스레 몇배씩 올리기로 든다면 그것은 또한 지주계급과 무산자 계급의 연정이라 부를 따름이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양극단의 위선적 동맹체제일 뿐 이념에서건 현실의 정치 지형에서건 중간 계급과 주류 계층은 기어이 실종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위선적인 연정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