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 증권시장은 언제나 나라 경제의 바로미터다. 코스피지수 외에 경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만한 것으로는 GDP 성장률 정도를 거론할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는 궤도에 올랐다"고 자신하는 것도 증권시장의 활황에 근거한 것일 테다. 더구나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1200을 넘나들고 빈사지경을 헤매던 증권사들이 모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펀드자금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다. 증권시장은 너무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축배를 들 일만 남았다고 할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인가? 일부 증권사들이 주장하듯이 주가는 과연 '영구 고원지대'로 올라설 것이며 경제 또한 정부 당국자의 분석대로 그동안의 개혁 성과에 힘입어 확실한 회복세로 달려갈 것인가. 불행히도 답은 "아니올시다" 쪽이다. 증권시장은 오히려 빈사지경을 헤매고,주가는 국제 자본흐름에 종속될 뿐 국내 경제와는 영 따로 노는 중이며,투자자들은 결과적으로 또다시 집단적인 착시에 말려드는 것은 아닌지 실로 걱정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오르는 주가에 대해서야 나무랄 이유도 딴죽을 걸 까닭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양극화 경제의 한쪽만의 잔치이거나,투기자본의 쫑파티이거나,과소투자의 역설적 함수이거나,최악의 경우라면 꺼져가는 촛불의 화려한 종말이거나,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합쳐 버무려 놓은 기형적 모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주식의 퇴장 현상이다. 작년에 6개사, 올들어 9월까지만 벌써 5개 회사가 주식을 전량 되사들이면서 제발로 증권시장을 걸어나갔다. 퇴출 기업까지 합치면 이 숫자는 작년에 26개사,올해는 25개사로 불어난다. 새로 증시로 진입한 회사는 올들어 9개사에 불과했다. 증권연구원 조사로는 4개 회사 중 1개 회사꼴로 증권시장을 아예 떠나고 싶어한다. 엄청난 상장 유지 비용에다 집단소송 위험 외에도 무려 280개로 늘어난 공시조항 따위를 감안하면 증권시장은 지뢰밭일 망정 자본주의의 동력이요 심장부가 될 수는 없다. 올들어 6월까지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2조700억원이다. 이 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만도 3조6000억원이다. 시장은 이미 마비상태요 본말전도의 구조다. 이런 구조는 놀랍게도 최근 수년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상장기업이 시장에서 조달해간 자금을 GDP 규모와 비기면 한국 증시는 더이상 자본시장도 아니다. 홍콩이 22%,싱가포르 2.64%,한국은 0.83%다. 영국조차 1.5%다. 증권시장으로서는 이미 조종(弔鐘)을 울린 꼴이다. 퇴장 기업이 신규 상장기업보다 많아진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기업'의 장기성장이 아니라 '주식'의 단물만 빼먹는 투기자본의 논리가 이미 증권시장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상장기업은 이미 투기꾼들의 포로로 전락했을 뿐이어서 후회가 막급이지만 이제는 도망갈 구멍도 없다. 증시 자체가 투기 자본의 캐시화 전략에 포획되었을 뿐이어서 증시의 선순환 구조고 뭐고 논할 가치도 없다. 신규상장이 끊어지고 자금조달은 제로이며,대주주를 겁박하고 배당압력 강화해서 주가차익 극대화하자는데 이제 겨우 코스피지수 1200이면 주가는 차라리 너무도 적게 올라 있는 셈이다. 반기업 투쟁가들이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명분으로 증권시장과 기업가정신을 지난 수년 동안 어떻게 훼손해 왔는지 그 결과가 분명해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르는 주가에 축배를 들 수 없는 이유다. 또 대통령이 주가를 근거로 경제가 좋다고 말할 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소위 '신자유주의자'들의 투쟁의 성과물을 근거로 "우리가 잘했지"라고,그것도 참여정부가 묻고 있다면 이는 코미디일밖에….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