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인들의 연말절세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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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송년 모임을 알리는 전화들이 걸려온다.
책상 위엔 연말 정산할 때 세금을 돌려받는 요령을 알려주는 희한한 안내장들도 날아든다.
안내장에는 "10만원 기부하면 11만원을 돌려준다"는 광고 문구가 당당하게 적혀 있다.
지갑에 넣어두면 행운이 온다며 빳빳한 2달러짜리를 접어넣은 룸살롱 광고 전단지와도 비슷해 보이고 인터넷을 통해 배달되는 대박사업 광고 문구 같기도 한 이 광고지는 알고보니 정치인들에게서 온 후원금 모금 전단지다.
룸살롱에서 보낸 2달러짜리가 진품인지 위폐인지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듯이 정치인들이 날려보낸 이 전단지 또한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도 쉽게 휴지통에 들어갈 수 있다.
겉봉에 쓰여진 이름조차 기억이 아련하고 더구나 자신이 속한 정당조차 밝히지 않은 우편물을 받아드는 기분은 참으로 고약하다.
소속 정당을 밝히지 못하는 속내 사정은 미루어 짐작하는 바다.
그렇게 이름을 내걸기 곤란하면 소속 정당을 떠나야겠지만 정치가 주는 단물이 남아있는 동안은 어디까지나 참고 버텨내는 법이다.
두꺼운 얼굴과 배짱,그리고 기회주의적 처신은 정치의 밑천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뭐라고? 정치인에게 10만원을 기부하면 정부가 11만원을 돌려준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소득공제만 해도 논란이 많은 터에 자신이 낸 돈보다 돌려받는 돈이 많다니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59조의 관련 규정을 찾아 읽어보니 과연 연간 10만원까지는 소득공제 아닌 세액공제라고 되어있다.
세액을 공제해주기 때문에 소득세에 붙는 주민세를 합치면 낸 돈 10만원에 돌려받는 돈은 11만원이다.
여기에 후원금을 카드로 내면 카드공제까지 다시 붙어 소득액에 따라 최고 13만원 이상 돌려 받게 된다.
정말 좋은 제도다.
그런데 이 돌려주는 몇 만원씩은 누가 주나?
문제는 그 정치인을 아주 싫어할지도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이 낸다는 점이다.
보통의 납세자들이 내는 돈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턱없는 보조금을 주는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종교의 자유가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에서 출발하듯이 정치의 자유도 특정 정치를 거부할 자유가 기본이다.
그런데 왜 나의 세금으로 전혀 엉뚱한 정치인에게, 심지어 반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희한한 법률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회 정치개혁위원회에서 만들어졌고 이미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이다.
국민 세금 우습게 가져다 쓰는 동업자 정신이 찬란히 발휘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던 꼴이다.
어떻든 이 법에 따라 정치 후원금을 낸 사람은 작년만 해도 모두 12만9800명이었다.
이들이 합계 404억5000만원을 냈고 소득 혹은 세액공제를 받았다.
놀랍게도 10만원 이하를 기부해 전액 세액공제를 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선관위도 알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날아드는 후원금 청구서가 부쩍 늘어났고 이 기특한 세액공제 제도에 대한 홍보도 충분히 이루어진 만큼 적지않은 월급쟁이들이 제 돈 한푼 안들이고 남의 돈으로 자신이 지원하는 정치인에게 10만원씩 후원금을 내게 될 것이다.
물론 환급액을 전부 합쳐보았자 금액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다.
그러나 '세금 무서운줄 모르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진정 문제다.
세금 무서운 줄 모르기는 전직 국세청장조차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는 엊그제 "언론이 '혈세'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당치 않다"며 거창한 훈계까지 인터넷에 올렸다.
집권당은 그러지 않아도 빚을 더 내 국가를 운영하려 들고 그것이 모자라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고 각종 세금 감면규정도 없애려는 터다.
물론 자기들의 몫은 빼고….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