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어느새 12월이 됐다. 연말이면 연례행사가 돼버린 개각에 대한 보도가 고개를 든다. 개각 여부와 인선 자체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시중에서는 인선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를 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정을 돌볼 인재들을 인선하는 데 있어 유념해야 할 것은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열등 의식에 사로잡혀 측근만을 중용하고 신뢰해서 결국 파멸에 이르렀다. 닉슨은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텍사스주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주경야독을 하며 자수성가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달변가로 유명해서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닉슨은 의지의 인물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게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좌절을 한 데 이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지만 끝내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지위도 그의 성격적 결함을 고치지는 못했다.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열등의식이었다. 닉슨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미국 동북부에 기반한 기성 권력층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에 우호적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이른바 주류 언론들에는 적대감에 가까운 의혹과 불신을 보였다. 그랬기에 닉슨은 언론에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비밀주의적 국정 운영을 선호하고 수많은 친위 비선 조직을 만들었다. 닉슨의 비극은 바로 인사정책에서 비롯됐다. 인맥과 충성도로 대통령의 수족이 된 측근들은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지적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법과 원칙도 안중에 없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비선 조직 중 하나가 저지른 불법행위에서 비롯됐다. 조직원들이 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무단 난입했고 이를 보도한 기사에 대해 닉슨은 언론의 근거없는 음해 공작이라고 잡아떼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닉슨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은 2005년 4.15 총선 뒤부터 여당 정치인들을 장관 등 요직에 임명해 왔다. 장관은 전문가들을 잘 활용할 줄만 알면 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 결과 전체 국무위원 20명 중 절반인 10명을 여당 의원들이 차지하게 됐다. 이번 개각 역시 친위 내각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한다. 지방의원 선거에 여당 대표로 나가는 장관들과 당으로 돌아오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공석을 다시 측근들로 채운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만족도나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아지면서 대거 외부 인사를 영입해 여론을 무마하는 이제까지의 인사 관행이 무시될 듯하다. 이미 청와대 보좌관들의 대통령 찬미가에 식상한 우리 국민들이다. 전직이 무엇이었든 간에,국민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상관없이 보좌진들은 대통령은 불세출의 성군이고 우리나라는 태평성대라는 발언을 하고 글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국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몇몇 신문사에 대한 대통령의 시비걸기에 대통령을 편드느라 하루가 모자라다. 개각과 관련한 보도가 사실로 굳어진다면 장관들도 보좌관들이 펼치는 유치찬란한 충성 경쟁에 뛰어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 땅에 닉슨의 비극이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닉슨의 비극은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비극이 뒤를 따랐다.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땅에 떨어지고 사회 지도층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곤두박질쳤다. 닉슨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측근 정치,비밀 정치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 서민들의 피끓는 애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닉슨의 비극을 방관하기에는 우리나라가 갈 길이 너무나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