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장금 열풍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대장금을 보면서 이른바 '장금 정신'을 되새긴다고 한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궁녀에서 전의(典醫)가 된 장금이의 도전정신을 본받아 강대국이 될 때까지 국력신장에 매진하자는 다짐들을 한다고 한다. 이미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 됐건만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장금을 만들어 수출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장금 정신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 자리에는 묘한 현실안주 의식이 자리잡았다. 반일(反日)감정은 있되 극일(克日)정신은 찾기 어렵다. 미국을 경멸하지만 버금가는 국력을 키우자는 다짐을 접할 수 없다. 중국의 오만방자함을 욕하면서도 중국의 속국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결의도 없다. 대신 '지금도 좋다' '이 정도도 잘 한 것 아니냐'는 자기 만족 의식이 팽배해 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과거 우리나라에도 장금 정신이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경제개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며 외국 언론들이 칭찬을 하고 외국 금융 회사들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렸지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매년 거시 경제학의 상식을 비웃는 목표들을 세우고 이들을 초과 달성해냈다. 먼 옛날의 일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자아도취증을 퍼뜨렸다. 우리의 실력을 과대 포장했다. 끝간데 없는 낙관론을 유포시키고 작은 업적이라도 부풀려 내세웠다.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와 자신들이 범한 실책을 숨겼다. 그래야 지지율을 높이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얕은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우리가 세계 5위의 강대국 대열에 올랐다고 선전했다. IMF 사태를 목전에 두고서도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역시 정치적 계산의 발로였다는 의혹이 짙다. 김대중 정부는 환란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던 장금 정신을 꺼뜨렸다. 우리는 IMF의 우등 졸업생이라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월드컵 4강 달성이 마치 세계 일류 국가라도 된 것인양 전국을 축제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현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희한한 논리를 총동원해서 우리야말로 동북아의 중심국이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우거나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우쭐대기에 바쁘다. 정부가 문제를 인정하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또 갈 길은 얼마나 먼 것인지,세계 경제에서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를 잊게 만들고 있다. 진정 우리 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자화자찬의 잔치상을 뒤엎어야 한다. 그래서 설사 정부가 올해 성장 목표치인 5% 성장을 달성한다고 해도 좋아해서는 안된다. 5% 성장은 최근 몇 년간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에도 못미치는 저성장을 해온 데 대한 상대적인 반등일 뿐이다. 우리 경제 규모를 볼 때 이 정도 성장도 대단하다고 뿌듯해하지는 말자.우리의 20배가 넘는 미국 경제는 지난 3분기에 4.1% 성장을 기록했다. 중국은 올해도 9%의 초고속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동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급락하기 전에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정치꾼들이 퍼뜨리는 자기만족,자아도취의 주술의 노예가 되어선 곤란하다. 2006년 새해는 잊고 지낸 장금 정신을 되살리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