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자본의 국적과 투기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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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KT&G 경영권 논란에 (정부가)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이나 그의 말을 받아 몇몇 당국자들이 "당장 M&A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다"며 거들고 있는 것은 당국자들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은행 이사진의 한국인 비중을 거론하면서 외국언론의 비판을 받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정부가 내세울 경제 실적이라고는 외국인 매수에 힘입어 주가가 조금 오른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은 한 부총리의 체질에도 맞을 테고.
사실인즉 그깟 사외이사 한자리 달라는데 특별히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다.
사외이사로 따지자면 개나 소나 한자리씩 돌아가며 꿰차는 자리인데 당국이 일일이 응대할 일도 아니다.
상대가 외국인이요 헤지펀드인 것이 꺼림칙하지만 굳이 의결권 분포로 따지면 정부도 상당한 스테이크를 보유하고 있으니 은밀히 움직이면 정부 뜻대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정부 복심대로 되면 좋고 안되어도 손실날 것이 없는 일에 호들갑이라니 당치도 않다!"
그러나…,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불행히도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국적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투기자본의 악행을 고발하자는 따위의 논리에서가 아니다.
증권시장의 규율이 필요악적 요소라는 교과서적 언명도 부인할 까닭이 없다.
문제는 한쪽은 벌거벗겨 팔다리를 묶어 놓은 상태이고 다른 쪽은 커튼 뒤 어둠 속에 숨어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한다면 이것은 게임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다.
김석동 차관보는 "투명한 경영, 수익성 경영이 최선의 방어책"이라는 흰소리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수도 없는 법규에서' '제멋대로' '무더기로' 국내 기업주의 의결권을 제한해놓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 당국이다.
금융 계열사 의결권 규제에서부터 출자한도 초과 의결권 박탈, 상호출자 의결권 제한, 감사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 배제시 의결권 3% 제한, 특별 이해관계자 의결권 제한,…제한…제한…등 온갖 이유를 붙인 '제한 시리즈'가 구체적인 목록을 보지 않고는 외울 수도 없는 지경이다.
뉴욕에서 작전 세력들 간에 어떤 담합을 하고 있는지,주식이 어디로 날아 다니는지,어떻게 불법적인 연맹을 구축하는지,자금은 어디서 동원되는지 도무지 알 까닭이 없고 그쪽 펀드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오리무중이니 이런 것을 놓고 투명성을 논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소극(笑劇)이다.
GM을 지배하는 자가 누구인지,씨티를 지배하는 자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주주명부가 분명치 않다고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부 당국의 순진성은 투기건 아니건 외국 자본을 탓할 일이 결코 아니다.
사외이사만 해도 미국에서는 다만 재벌 가문들 간의 은밀한 교차지배 구조일 뿐이라는 지적을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자본의 국적성 논란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자본의 국적성을 따져 물을 수 없다면 삼성전자 본사의 미국 이전도 허용되는 것이 수순이다.
'수익성 경영이 M&A방어책'이라고 자신한다면 삼성전자가 수익성이 시원찮은 백색가전을 팔고 호남공장 문을 닫는 것에 대해서도 당국자들은 찬성표를 던져야 옳다.
그 결과인 양극화도 '당연 찬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이런 사람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대통령은 또 무슨 논리로 양극화를 아젠다로 삼는 것인지.
더구나 금융과 산업의 분리원칙을 그토록 자신한다면 해외 금융자본의 국내 산업지배에 대해서는 왜 별다른 대책이 없는지도 답변해야 마땅하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이들 질문에도 가르침을 주시기를.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