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로데오 상가는 국내 100여개 로데오 상가 중 원조격에 해당한다. 1970년대 중반 압구정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후 자리 잡게 된 고소득층의 2세들이 1990년대 초반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로데오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강남,서초,송파구 일대 부유한 40,50대 여성들이 청담동 명품 거리를 애용한다면 이들의 자녀 또래인 20대 여성들은 압구정 로데오 상권의 주요 고객층을 이룬다.

같은 압구정동이라도 현대백화점 본점 앞에 형성된 압구정역 상권과 로데오 상권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로데오 상권이 의류 업종을 주력으로 한 유입 상권인 데 비해 압구정역 상권은 인근에 거주하는 20대 신세대들과 30,40대 직장인들의 고급 유흥 수요를 소화해 내는 동네 상권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비역세권,후자는 역세권이란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유입 인구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20,30대 여성이 단연 압도적이다. 한양아파트 건너편 입구와 학동사거리 쪽 입구를 기점으로 기역자로 형성된 의류 상가에 100여개 가게들이 촘촘히 줄지어 있어 쇼핑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간간이 눈에 띄는 남성들은 이면골목 음식점이나 주점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인데 주로 외제 차를 몰고 온다는 게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이 곳은 한때 '오렌지족 상권'으로도 불렸다.

상가뉴스레이다 서준 상권분석팀장은 "이 상권은 외제 차를 몰고 오는 부유층 자녀들이 돈을 뿌릴 것 같지만 실상은 3~4년 전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외화내빈 상권"이라고 말했다. 실제 의류상가 군데군데 마치 이빨 빠진 듯이 가게가 비어 있다.

주인이 건물을 리뉴얼하는 게 아닌 이상 점주가 권리금을 포기하고 철수한 곳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는 '권리금 0원' 의류 가게 리스트가 빼곡이 적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낮 시간 여성들을 겨냥한 의류 신발 액세서리 가게는 손님을 구경하기 힘들다. 그나마 20대 여성들이 3~4명씩 무리 지어 패션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것은 저녁 무렵 3~4시간이 고작이다.

서준 팀장은 압구정 로데오상권 쇠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는 전반적인 의류경기 불황이다. 명동처럼 하루 유동 인구가 100만명 가까이 돼 두터운 수요층이 없는 지역은 매년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둘째는 상품 자체의 취약함이다. 이 곳 상가의 옷들은 명품이 결코 아니다. 고가 수입품만 갖다 놓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급 브랜드를 모방한 이국 지향의 무명 브랜드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해외를 많이 다녀 잔뜩 눈이 높아진 부유층 소비자들이 금방 식상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점주들이 자주 바뀌어 단골 고객이 사라짐으로써 안정성이 흔들리는 것도 약점이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실망한 젊은이들은 다양한 놀거리를 찾아 코엑스나 강남역으로 향한다.

상권의 취약성으로 점주 및 고객 이탈이 악순환하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메인 거리와 이면 골목에서 의류 잡화 미용실 등 패션 업종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뒤따른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의류 상가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과 반비례,음식점이나 주점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단 이곳을 드나드는 고객 특성에 걸맞은 매장을 갖춰야 한다. 창업컨설팅 업체인 FC창업코리아 이준 이사는 "이 곳 단골 고객들은 차를 몰고 돌아다니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메인 거리에서 금방 눈에 띄는 이면골목 초입에 가게 자리를 잡으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매장 외관이나 인테리어에서 촌티가 풍길 경우 고객들이 질색하기 때문에 투자비가 들더라도 이국적이고 화려하게 가게를 꾸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음식 맛이나 가격은 그 다음 순서란 얘기다. 원목이나 대나무 벽으로 외관을 두르거나 주차장에 자갈을 깔고 입구를 일본 이자카야 풍으로 치장하면 일단은 합격점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이 상권의 고객들은 가격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보다는 높은 가격에 걸맞은 서비스를 원하는 편이다. 실제 이곳에선 소주방이나 호프집을 찾기 어렵고 세계맥주 전문점,웨스턴 바가 주종이다. 세계맥주 전문점의 경우 맥주 5병과 마른 안주 한 세트 가격 4만원짜리가 가장 잘 나간다. 객단가(1인당 소비지출액)가 1만~2만원에 달해 노원역 상권(5000원 이하)의 두 배 이상이다.

상권정보 업체인 타스테크의 박대영 수석 컨설턴트는 "2009년 분당선 연장 구간이 왕십리까지 이어지면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에 청담역이 생기는데 이를 계기로 상권이 더 발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파스쿠찌와 같은 대형 매장이 버티고 있는 이 상권에서 2층 커피전문점들이 상당수 문을 닫은 사례가 있다"며 "다른 상권에서 흔히 눈에 띄는 고깃집 횟집 감자탕도 여기서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한식보다는 양식 레스토랑이나 일본식 돈가스점이 더 낫다는 조언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