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930원 선이 무너졌다.

환율 급락세는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외환시장에서는 900원 선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50원을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수출 중소기업들은 930원 선마저 붕괴되자 비명을 지르고 있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달러당 11원70전이나 하락,927원90전에 마감됐다.

8년6개월 만의 최저치다.

연초에 비하면 8.3%나 하락한 것이다.

지난달 21일 폐막된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세계 불균형(Global Imbalance)'을 공동성명 의제로 채택한 이후 본격화하기 시작한 '약(弱) 달러' 기조가 아시아 통화시장을 뒤흔들면서 원화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환율 급락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로 인한 '글로벌 약 달러'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4%에 달했고,저축률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0.5%)를 기록했다.

쌍둥이 적자(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로 상징되는 미국의 과소비를 시정해야 한다는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공동성명의 영향이 글로벌 달러 약세를 대세로 굳히면서 원화 환율 하락을 촉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때맞춰 중국이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위안화를 평가절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 글로벌 달러 약세 현상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글로벌 달러 약세에 맞춰 금리 및 환율 정책을 적절하게 마련하지 못해 환율 급락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3년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의 후유증 탓인지 이제는 환율을 책임지겠다는 당국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신용카드 소비 확대 등 무리한 경기 부양책으로 인한 부실 확대를 막으려다 보니 금리를 묶을 수밖에 없었고,결과적으로 환율의 지나친 하락을 초래했다.

경기 회복에 매달리다 보니 금리를 올릴 타이밍을 놓쳤고,이제는 환율 하락에 따른 기업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물가 불안을 무릅쓰고라도 금리를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 같은 글로벌 환경과 겉도는 금리정책의 영향으로 원화의 환율 하락이 유독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3년 말에 비하면 원·달러 환율은 22.2%나 하락했다.

수출기업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 950원 선이 무너지면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된 중소기업들은 이제 수출을 중단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대기업들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경상수지도 이미 2개월 연속 적자로 돌아섰다.

이미 우리 경제에는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이날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미국 4월 고용지표 부진 등의 영향으로 전날보다 1.47엔 하락한 111.10엔을 기록했다. 7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약 달러의 충격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