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성남행 광역버스를 타고 판교 IC를 지나자마자 들르는 첫 정류장.분당의 관문 서현역이다.

분당 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한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서현역 상권은 야탑역 상권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서현역 상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삼성이 소유한 유일한 백화점인 삼성플라자가 1997년 말 오픈한 이후부터.신유진 삼성플라자 홍보팀 주임은 "백화점에서도 주변 상인들과 경쟁이 될 만한 업종을 피하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상권 자체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현재 서현역 로데오 거리에 의류 업종이 많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플라자는 98년 연 2700억원이던 매출이 올 상반기에만 3000여억원을 기록했다.

유동 인구를 보면 주중에는 5만~6만명, 주말에는 10만명 이상이 삼성플라자와 서현역 상권에 몰린다.

서현역 상권은 삼성플라자를 중심으로 해서 북동쪽 거리(이매촌 방향)와 남서쪽 거리(분당구청 방향)가 여러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먼저 유동 인구 면에선 북동쪽이 남서쪽에 비해 6 대 4 정도로 앞선다.

이는 서울과 연결되는 버스 정류장이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인구 유출입이 남서쪽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또 인구 구성을 본다면 북동쪽은 10~20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남서쪽은 30대 이상 직장인이 많다.

북동쪽에 비해 남서쪽에 분당구청을 비롯한 관공서,오피스가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권리금이나 임대료 시세도 차이가 있다.

당연히 유동 인구가 많은 북동쪽이 남서쪽에 비해 비싸다.

북동쪽 거리에 위치한 태평양부동산 손준근 대표는 "권리금은 5000만~1억원, 임대료는 50만~2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서현역 상권은 강남에 버금가는 분당신도시 주민들의 높은 소득 덕분에 서울의 대형 상권 못지않은 세력을 자랑한다.

삼성플라자 정문 앞에 위치한 '크리스피 크림 도너츠' 서현점의 경우 작년 10월 오픈 이후 단숨에 전국 9개 점포 중에서 서울 소공동 본점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상권 파워가 좋다. 이 점포의 현재 월평균 매출은 3억2000만~3억4000만원에 달한다.

또 남서쪽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커피 빈'도 일평균 방문객이 600명을 넘는 데다 작년에 비해 올 상반기 매출액이 130%나 증가하는 등 성업 중이다.

서현 상권에선 기업형 가게는 잘되는 데 반해 소규모 영세 상인들이 죽을 쑤고 있다.

남서쪽 거리에서 10년 넘게 장사해 온 '피자롤'은 경기 침체를 견디다 못해 지난 10일 결국 문을 닫았다.

이 가게를 운영해 온 김정현 사장(50·남·가명)은 "피자·스파게티 집이 처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최근 16~17개로 불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져 도저히 금융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인 배스킨라빈스 카페가 들어올 예정이다.

10~20대가 즐겨 찾는 노래방이나 PC방과 같은 업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북동쪽 거리에 위치한 서현노래방 장선희 사장(46·여)은 "인근 S노래방이나 Z노래방과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노래방이 20억원씩 투자해 장사하는 통에 우리 같은 2억~3억원짜리 노래방은 다 죽게 생겼다"며 "권리금을 절반이나 내렸는 데도 2년째 나가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남서쪽 거리에서 최근 문을 연 인터맥스(InterMax) PC방의 임도규 사장(27·남)은 "PC방이 북동쪽 거리에 15군데,남서쪽 거리에 3군데 영업 중이다.

PC방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디 한 군데서 문을 열면 다른 곳에서는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외식업의 경우 월드컵 반짝 경기로 인해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남서쪽 거리 순대 골목에서 11년째 돈가스 집인 '아리수'를 경영하고 있는 유병찬 사장(56·남)은 "올초에 비해 30% 정도 매출이 증가했다.

하지만 임대료 재료비 등 비용 부담이 커서 순익을 따지면 겨우 유지만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9평 남짓한 이 가게의 월평균 매출은 1000만원이며 임대료는 170만원을 내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키로 한 방침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북동쪽 거리에 위치한 천용진헤어그룹의 천용진 원장(41·남)은 "미용업 같은 경우 누구든지 쉽게 취업할 수 있는 데다 자발적인 이직이 많은데 이런 특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