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아까운 쓰레기(?)가 많다. 이사하면서 아예 교체하는 수도 있지만 옛집에선 멀쩡해 보여 싣고 왔는데 막상 새집에 놓으니 영 '아닌' 듯해 버리고 새것을 사들인 탓이다. 집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액세서리를 사면 그에 맞는 옷을 구하게 되고 그런 다음엔 새 구두가 필요하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건데 사회학 용어론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D Diderot)가 친구에게 선물받은 진홍색 가운을 입은 뒤 갑자기 옛책상이 허름해 보여 바꾸자 의자가 못마땅해지고 이어서 벽걸이까지 모든 게 거슬려 결국 몽땅 새로 장만했다는 데서 생겨났다.

상품이 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소비가 소비를 부른다는 얘기다. 필요보다 심리적 욕구에 좌우되다 보면 자연히 비싼 것,흔치 않은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남과 구분하려는 과시적 소비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T Veblen)은 경제 상황이 악화돼도 고가품 수요는 줄지 않는다며 이는 부유층의 과시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치품의 경우 비쌀수록 잘 팔리고 값을 내려 대중화되면 오히려 수요가 감소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하는 건 여기에서 비롯됐다. 보통사람은 부자처럼 보이고 싶고,부자는 보다 특별해 보이고 싶은,동조와 차별화 심리가 사치품 시장을 유지,확산시키는 근거로 작용하는 셈이다.

명품병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명품으로 불리는 사치품 소비는 그칠 줄 모르고 짝퉁 또한 늘어만 간다. 가짜 명품을 대규모로 제조,유통시킨 업자들이 검거된데 이어 이번엔 특급우편으로 위장한 가짜가 적발됐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비는 자신을 남과 구분하지만 소유가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디드로는 물건을 바꿨더니 집은 화려해졌지만 손님은 끊기고 자신은 우울해졌다고 털어놨다. 소유로 존재를 확인하자면 끝이 없다. 명품병을 막자면 흉보고 욕하기 보다 디드로의 사례를 널리 알리고 소유와 행복이 비례하지 않음을 일러주는 게 먼저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