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적 차원에서 인간 삶의 질(質)을 계속 상승시키고 있지만,정신적 차원의 삶의 질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성찰 없이는 저절로 상승하지 않는 것 같다.

정신적 차원의 삶의 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더 탐구해 봐야 할 문제지만,이 글에서는 내가 속해 있는 국가,민족,직장,가정 등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자기희생 의지를 충직(忠直)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하고,그것이 공동체의 흥망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그리고 21세기적 충직 문화를 정립하려면 어떤 리더십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우리 한국이 배워야 할 선진국 중에 스위스가 있다.

우리나라 경상도 면적 정도의 작은 국토,지하자원도 없고 농사 지을 만한 땅은 전 국토의 5%밖에 안 되는 나라,이런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2006년 1월22일 로마에 있는 바티칸 광장에서는 스위스 근위병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500년이라는 긴 역사도 놀랍지만,세계 제일의 부국이 된 지금도 스위스 청년들이 바티칸에 가서 용병으로 근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의 호반 도시 루체른(Lucerne)에는 심장에 창이 꽂혀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자의 조각상이 있다.

1789년 프랑스 루이 16세의 용병으로 가 있다가 혁명의 와중에서 순직한 스위스 청년 4만명을 애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스위스가 가난했을 때 남자들은 외국 용병으로 가서 봉급을 받아 본국에 송금하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들은 유사시에 절대 도주하지 않고 모두 현장에서 순직했다.

스위스 국민의 이런 충직 정신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티칸 교황청은 그래서 지금도 스위스 근위병만을 채용한다.

충직은 물질 아닌 정신의 품질이다.

스위스 국민의 충직 정신이 경제활동 분야에서 발휘되면서 오늘의 스위스가 건설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 보자.충직에 관한 한 우리나라도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할 만큼 자랑스러운 역사가 많다.

고려 말 정몽주,최영,두문동 72인에서부터 조선 왕조 초기 어린 단종을 폐위하고 부당하게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끝까지 항거하며 3족 멸망의 화도 마다하지 않은 사육신,그리고 억울한 모략과 온갖 수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국운이 기울 때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한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역사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충직 정신의 소산이다.

국가에 대한 우리의 충직 정신은 1960년대 산업화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스위스처럼 가정과 직장에 대한 충직으로 그 영역을 넓혀 갔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원조가 중단되면서 우리나라는 외환부족 위기에 빠졌고,우리 정부는 당시 라인 강의 기적을 일구며 경제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서독 정부에 차관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의 차관 상환 능력을 의심한 서독 정부는 한국 간호원들을 서독에 다수 파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하여 한국 간호원들의 서독행이 시작됐고 1970년대 후반까지 총 1만1200여명의 간호원들이 외화 벌이에 나선 것이다.

당시는 대학생 등록금은 물론 중·고등 학생 학비 조달도 힘겹던 시대였다.

남자 아이를 공부시켜야 가문이 발전한다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오빠나 남동생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동생이나 누나가 공장에 나가 일하던 시절이었고,한국 간호원들이 대거 서독행을 지원한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였다.

그래서 서독에 간 간호원들이 받은 급료는 은행에 머물지 않고 대부분이 즉시 한국으로 송금됐으며,이 돈으로 공부한 남동생,오빠들이 한국 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서독 정부가 염려했던 차관의 상환은 (간호원들 예금 동결이 아니라) 이렇게 공부한 오빠·동생들이 이룩한 경제성장으로 해결됐다.

1970년대 아직 '보릿고개'라는 이름의 가난이 남아 있을 때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식품이 라면이었다.

쌀밥 한끼 먹을 돈이면 라면으로 네끼를 때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라면 수프에 들어가는 건조된 야채 조각에 애벌레 알이 붙어 있다가 이것이 유통 과정에서 부화하면 "라면에서 벌레가 나왔다" 하는 소동과 함께 해당 라면 회사의 직원이 현장으로 불려가야 했다.

이렇게 불려온 직원은 "어디 벌레 좀 봅시다" 하고 손바닥 위에 놓인 벌레를 들여다 본 후 "이게 라면 부스러기지 무슨 벌레요!" 하면서 벌레를 자기 입에 털어 넣어버렸다.

이 사원의 충직과 애사심에 감복해 현장에 와 있던 신문기자들조차 말 없이 가버렸다.

충직 정신은 조직 문화로 발전하고,조직 문화는 조직의 성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충직 정신으로 열심히 일한 사원들이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그들은 자기 회사를 오늘날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보유하게 만들었고,한국 라면의 품질·가격 경쟁력을 세계 1위에 올려 놓는 업적을 이룩했다.

중국에서 (한국이 원조인) 김치가 수입되지만 (중국이 원조인) 라면은 수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본 라면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지만 역으로 한국 라면은 일본 소비자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그리고 1인당 라면 소비량 비교에서 한국(77식/연간)이 일본(37식/연간),중국(18식/연간)을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모두 충직 정신으로 무장한 평범한 무명(無名) 일꾼들이 이룩한 업적이다.

1963년 기준,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79달러였다.

당시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170달러,태국은 260달러였음을 감안하면 불과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셈이다.

그런 우리가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과정에는 충직 문화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러나 오늘날 '충직'이라는 어휘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지 않은가? 21세기평화재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쟁이 나면 나가 싸우겠다"는 답변을 한 우리나라 20대 젊은이들 수는 1995년 77.9%에서 2005년 63.9%로 떨어졌고,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 조사에서는 10.2%로 급격히 감소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수치는 한국 일본 중국 등 3국 중에서 한국이 최하(最下)위라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직장에 대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일부 기업의 기술력이 세계를 선도하게 되자 (자기가 근무하는) 기업의 기술을 빼내어 외국 기업에 파는 사건이 2005년 한 해 동안에만 29건,그 피해액은 35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2006년 1월17일자 한국의 주요 일간지 보도). 산업 스파이라면 외국인의 소행으로만 알았는데,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국민이 자기 직장의 기술을 빼내는 행위가 됐다.

우리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충직 정신이 분명히 실종되고 있다.

역사 속에는 흥망(興亡)이 유수하다.

무엇이 흥망을 좌우하는가? 역사학자 토인비(Toynbee)는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라는 두 개념으로 역사 속의 흥망을 설명한다.

가혹한 자연 환경이나 외적의 침입,또는 조직 내부의 도덕성 위기 등을 토인비는 도전으로 꼽는다.

이러한 도전에 대해 그 조직이 응전에 성공하면 계속 존속,발전할 수 있고,실패하면 소멸해 간다는 것이 토인비 역사철학의 개요다.

그런데 토인비는 도전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도전은 조직 내부로부터의 도전 즉 자기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도덕성 위기라고 강조했다.

충직문화의 소멸은 조직 내부로부터의 도전에 해당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응전할 것이냐에 있다.

"평생직장 시대는 갔다"는 무책임한 말을 도마 위에 올려 보자. 평생직장 관념 없이 어떻게 자기 일,자기 직장에 충직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은 평생직장 문화 속에서 탄생할 수 있는 충직 정신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성과급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성과급은 단기적으로는 조직 성과를 올릴 수 있겠지만,장기적으로는 패자는 물론 승자조차 스트레스 누적으로 회사를 떠나게 만든다.

우수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성과가 뒤지는 사람 여럿을 먹여 살린다는 정신적 차원의 '명예'로 보상받아야지,'돈'에 의한 보상은 (장기적으로) 본인은 물론 조직 전체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

장기적 우량기업은 평생직장 문화에서 나온다.

충직문화 재건을 위한 또 하나의 응전 방안은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의 개발에 있다.

헌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헌혈하는 사람에게 얼마의 돈을 준다면 그 돈은 외재적(extrinsic) 가치에 해당한다.

돈을 안 받더라도 기꺼이 헌혈을 하는 이유는 헌혈이 귀중한 생명을 구한다는 정신적 차원의 '기쁨' 즉 내재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내재적 가치에 매력을 느끼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충직문화 구축은 내재적 가치를 개발해 그것을 조직 목표에 연결시키는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외재적 가치 못지않게 내재적 가치도 숭상하는 문화가 우리를 정신적 선진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

○약력

△1940년 충남 공주생
△1963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6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 석사
△1971년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 박사
△1973년 서울대 상과대 조교수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2005년 서울대 명예교수
△2005년 한양대 석좌교수

○주요저서

△계량적 세계관과 사고체계
△과학과 기술의 경영학
△경영 경제 인생강좌 4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