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도 예상못한 ‘대박’

요즘 CF광고에는 ‘프리런칭(Prelaunching)’이란 기법이 자주 사용된다. 권투 시합에서 ‘오픈 게임’이 적당한 기다림을 통해 관객들에게 ‘메인 게임’의 흥분을 더해주듯 프리런칭도 본 캠페인을 앞두고 소비자들에게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오픈 게임엔 종종 기대 이상의 재미도 있다. 무명 선수가 상대 선수를 단숨에 녹다운시키는 예상 밖의 활약을 보이며 메인 게임 이상의 재미를 안겨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이 ‘대한민국 1등을 넘어-비보이(B-boy)’ 편의 후속으로 선보인 새 CF광고인 ‘김연아’ 편도 이런 뜻 밖의 결과를 낳은 케이스다.
“당초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캠페인은 프로야구 스타인 이승엽 선수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광고입니다. 비보이 편도 김연아 편도 이승엽 편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오픈 게임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김연아 편은 예상과는 달리 메인 게임에 대등할 정도의 대성공을 거뒀습니다”(오리콤 전략 1팀 임정욱 차장).
김연아 편은 전작인 비보이 편에 이어 ‘원신 원컷(one scene one cut)’의 촬영기법을 활용했다. 원신 원컷은 하나의 장면을 컷없이 촬영하는 방식. 물론 김연아 편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트리플 점프를 하는 모습과 원을 그리는 피겨스케이트의 클로즈업 장면, 연기 마지막 포즈를 취하는 상반신 모습 등 원신 쓰리컷(one scene three cuts)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편집을 최소화해 시청자의 감정몰입을 노렸다는 점에선 ‘원신 원컷’ 방식을 차용한 셈이다.
임 차장은 “김연아 선수의 현란한 액션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김 선수가 얘기하는 가슴 뭉클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작을 느리게 연출해 메시지의 전달력을 더욱 높였다”고 설명했다.

순발력 있는 기획으로 이미지 ‘Up’

‘내겐 대한민국도 세계도 1800제곱미터다. 난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을 작은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는 짧은 내레이션도 광고의 호소력을 높였다. 카피라이터인 오리콤의 원준연 차장은 “처음에는 김 선수의 목소리 대신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입히는 것을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성우 버전으로 나가니 그림하고 메시지가 따로 노는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오리콤 측은 김 선수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 다소 어색하고 정제되지 않은 그의 목소리가 결과적으로 메시지의 전달력을 훨씬 배가시킨 것.
광고가 나가기 전인 촬영 때부터 취재진들이 몰려 홍보효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해 12월 22일 열린 서울 목동의 실내링크 광고 촬영 현장은 관계자와 김 선수 외에도 김 선수를 보러 몰려온 팬과 사진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밤 늦게까지 촬영 현장을 지켰던 원 차장은 “대형 스타의 경우 광고가 나가기 전부터 촬영 에피소드가 연예 뉴스 등을 통해 공개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비인기종목 선수인 김 양의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라며 “덕분에 상당한 사전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광고대행업체인 오리콤이 KB국민은행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언 2년이 됐다. 지난 2005년 3월 광고대행 계약을 한 뒤 6월 ‘신호등’ 편을 시작으로 2005년 12월 ‘새로운 고객 사랑법’,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나온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국민체조’, 월드컵 본선 탈락의 아쉬움을 표현한 ‘월드컵 슛돌이’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오리콤이 이처럼 KB국민은행의 광고대행 업무를 독식해 온 것은 기업 니즈에 맞는 적절한 기획력 덕분이다. 고객 기업이 어려운 환경에 놓일 땐 메시지를 돌려 말하기보단 강렬한 톤으로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해 기업의 존재감을 무겁게 알렸다.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피부에 와닿는 말랑말랑한 광고를 내보내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비보이-김연하 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캠페인은 국민은행의 난국을 무난히 극복시킨 사례로 꼽힌다. 비보이 편이 TV 전파를 탔던 지난해 11월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입 협상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시기다. 매각 협상 자체에 대한 불법 시비로 시작된 이 논란은 급기야 론스타의 계약 파기 선언까지 이르며 국민은행의 대외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종 모델로 이승엽 선수를 염두에 두고 지난해 4월부터 추진했던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캠페인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메시지가 론스타의 계약 파기로 사실상 빛이 바랬고 캠페인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국민은행과 오리콤은 이런 시각에도 불구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마침 김연아 선수는 프랑스 국제빙상연맹 시니어 피겨 그랑프리 예선 4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오리콤은 순발력있게 김 선수를 광고 모델로 끌어들였다.
“다소 모험이 될 수도 있었지만 손상된 대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죠”(임 차장).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캠페인은 이렇게 위기를 넘어 국민은행의 장기과제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됐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모델 섭외는 이처럼 아주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상당히 순조로웠다. 앞서 나간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캠페인 첫 회인 비보이 편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비보이 광고는 장엄한 음악을 배경에 깔면서 비보이의 고난도 기술인 ‘엘보 나인틴’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준다. 세계 정상에 서려고 하는 비보이의 노력을 통해 KB국민은행의 고객에 대한 변혁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임 차장은 “모델 제안은 그랑프리 예선 대회를 끝내고 김 양이 귀국한 뒤에야 이뤄졌다”며 “비보이 광고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인지 광고주는 물론이고 김연아 측도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모델 = 성공의 보증수표?

급조된 ‘김연아’ 카드는 KB국민은행에 뜻 밖의 선물을 안겨줬다. 김 양이 계약을 마친 지 한 달 만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시아팰리스에서 열린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에서 다시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TV, 라디오, 신문 등 모든 언론 매체가 김 양을 헤드라인 또는 1면 주요 기사로 다뤘고 광고효과는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그랑프리 예선에서 우승한 것만도 한국 빙상 역사를 바꾸는 대단한 기록이라고 생각해 2억원 상당의 계약금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한 뒤 종합 대회에서 다시 우승을 할진 정말 몰랐습니다. 만약 뒤늦게 계약을 했다면 아마 5억원 이상은 냈어야 했을 겁니다(웃음)”(국민은행 김진영 과장).
국민은행과 광고 모델 계약은 여럿에게 행운을 안겨줬다. 비보이 편에 캐스팅 됐던 ‘갬블러’ 역시 광고 촬영 2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비보이 호다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갬블러를 포함한 한국의 비보이는 유럽에서 몇 차례 우승을 거뒀지만 본 고장인 미국에선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김 과장은 “두 사람 모두 KB국민은행과 광고 모델을 맺고 더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너무 기쁘다”며 “내달 중 선보일 이승엽 편도 이런 전례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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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메일 인터뷰 김연아

“이상형이요? 성격·외모, 남자다우면 좋겠어요.”

하루 일과는?

“보통 아침, 저녁에 2시간씩 아이스링크에서 연습하고 그 밖에는 체력훈련과 근력운동을 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스포츠전문병원에 가서 마사지도 받고 척추교정을 받아요. 요즘은 허리통증 때문에 연습은 저녁에 1시간하고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재활운동과 물리치료를 하고 있어요.”

그랑프리 대회 우승 이후 좋아진 점과 나빠진 점은 무언지?

“좋은 점은 피겨가 더 많이 알려지면서 저말고도 다른 선수들을 응원도 해주시고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서 선수들이 많이 힘을 얻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나쁜 점은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 바깥에서 밥을 먹거나 돌아다닐 때 많이 불편해요.”

국민은행 CF광고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과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아이스링크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까 추운 게 좀 힘들었어요. 주변에서 모두들 멋있다고들 하셔서 기분이 좋아요.”

남자친구는 있나?

“아직 없고요. 이상형을 말한다면 성격과 외모가 남자다웠으면 좋겠어요.”

밸런타인데이 때 남자친구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초콜릿이나 사탕은 받아봤자 잘 먹지않으니깐 귀고리나 예쁜 액세서리 같은 거 받고 싶네요.”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은?

“선수로선 아이스쇼 월드 투어를 하고 먼 장래엔 코치를 할 수 있음 좋겠어요.”

대회나 촬영 장소 등을 항상 어머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것 같다. 좋은 점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제 이동할 때 짐이 많아서 어디든 저 혼자 다니긴 어려워요. 그럴 때 엄마가 있으니깐 항상 편하죠. 아쉬운 점은 가끔 자유가 없다는 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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