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건강까지 챙기는 '스킨십 마케팅' 주효

좀처럼 소비경기가 살아날 줄 모르는 가운데 방문판매업(인적 무점포 판매업)은 불황을 모르는 성장 업종으로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한국직접판매업협회가 추계한 작년 국내 방문판매 시장 규모는 3조원으로 2000년대 들어 매년 10%대의 성장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수만개의 군소 방문판매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작년 시장 규모는 9조원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방문판매업은 1 대 1 대면 방식의 판매를 하고 있어 백화점 대형마트 등 매장형과 달리 오히려 불황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진단한다.

경기가 안 좋은데 방문판매 시장이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얘기다.



◆불황 모르는 방문판매 시장

국내에서 방문판매의 위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화장품 시장이다.

1997년까지 화장품 시장은 전문점,방문판매,백화점 세 유통 채널이 시장을 삼분(三分)하는 구도였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마트가 급부상하면서 전문점과 백화점 유통은 위축됐지만,방문판매는 오히려 매출이 늘어 가장 비중 높은 유통 채널로 부상했다.

'방판 강자'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방문판매 매출이 12% 증가하면서 부동의 1위를 지켰고,방문판매를 하지 않던 업계 2위 LG생활건강도 2002년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이 분야에서 매년 두 배씩 매출을 늘려 나가고 있다.

랑콤,에스티로더 등 주로 백화점 유통에 의존하는 유럽계 '글로벌 브랜드'가 유독 한국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것도 '방판의 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 한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화장품 방문판매 1위 업체인 '메리케이'는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발효유 업계에는 한국야쿠르트가 있다.

1971년 야쿠르트 아줌마가 등장한 이래 지난 2월 말까지 이 회사가 방문판매로 판매한 발효유는 총 400억병.이를 일렬로 눕히면(한 병 7.4cm) 약 300만km로 지구를 70바퀴 돌 수 있다.

발효유 매출은 특히 1998~2001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4년 새 한꺼번에 2000억원이 뛰어올랐다.

웅진코웨이 역시 1998년 정수기 렌털 제도를 도입,서비스와 영업을 겸한 방문판매원 '코디'를 기용했다.

80명으로 시작한 코디는 현재 8000여명으로 늘었다.

정수기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순이익도 100배 증가했다.

방문판매 전문인 이 두 회사가 외환위기 때 급성장한 것은 1 대 1 대면 판매 방식이 불황에 특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맞춤형 서비스로 고객 마음 잡는다

방문판매의 위력은 판매원의 '발품'과 '맞춤형 서비스'에서 나온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주거지역의 한 동네를,오피스 밀집지에서는 한 회사 건물을 평균 7년 가까이 혼자서 담당한다.

오랜 기간 발품을 팔아 모은 고객들의 시시콜콜한 정보는 그 어떤 유통업체의 CRM(고객관계관리) 데이터보다 자세하고 정확하다.

서울 둔촌동 신성아파트를 맡고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 황용금씨(53)는 102동 1001호에 사는 이영재군(11)이 갓 돌을 지났을 때부터 10년간 이 집에 발효유를 배달해왔다.

영재가 세 살이 됐을 때는 자연스럽게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야쿠르트 에이스'를,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과즙이 들어간 발효유 '뿌요 사과맛'을 넣고 있다.

변비에 시달리는 영재 엄마에겐 '매치니코프'를 월·수·금요일에,술자리가 잦은 영재 아빠용으로 '윌'을 화·목·토요일에 배달한다.

황씨의 판매 수첩에는 영재가 좋아하는 과일,키와 몸무게의 변화,가족들의 생일 등이 꼼꼼히 적혀 있다.

서울 중림동 CJ영업본부를 5년간 맡아온 강선용씨(34)는 회사 인사담당자보다 '근태관리'가 철저하다.

회사에 나온 직원의 책상에만 발효유를 배달하고 있기 때문.외근이 잦은 영업사원들이 정기적으로 발효유를 받아 먹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고 강씨가 새롭게 도입한 판매 방식이다.

사무실에 나온 날만 먹고,한두 달 단위로 먹은 만큼만 계산하는 것.그의 수첩에는 이 회사 직원들의 휴가 일정까지 자세히 메모돼 있다.

3만2000명의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 사원은 1인당 평균 100명의 고객을 맡는다.

매일 고객 1명씩을 보통 세 달에 한 번꼴로 찾아가는 셈.이는 여성들의 기초 화장품 사용 주기에 맞춘 것이다.

과거 화장품 방문판매 사원은 주로 동네 전업주부들을 한 집에 모아 놓고 함께 수다도 떨고 마사지도 해주며 화장품을 팔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하느라 바쁜 직장 여성들이 방판의 주고객이다.

커다란 화장품 가방 대신 과거 판매 기록을 저장해 둔 PDA로 무장한 방문판매 사원들은 자기 고객이 쓰고 있는 제품이 다 떨어질 때쯤 신제품 샘플을 들고 조용히 나타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화장품 방문판매가 여전히 녹슬지 않는 파워를 자랑하는 것은 제품 사용 주기에 맞춘 '적시(適時) 판매'로 직장 여성들을 고정 고객으로 붙잡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