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지만 주요 그룹들은 의외로 차분하게 대응 태세를 가다듬고 있다.

한·미 FTA 타결을 전폭적으로 환영하고 지지하지만 마치 대박이 터진 것처럼 흥분하거나 해서는 결코 아니라는 분위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경원 글로벌연구실장(전무)은 "한·미 FTA는 궁극적으로 한·EU-한·일-한·중 FTA 협상으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들도 이런 거대한 흐름에 맞춰 경영전략을 손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글로벌 경영전략을 급격하게 수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FTA 협상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경제계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기간은 4년이나 되는 만큼 기존 전략에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을 비롯한 대다수 기업들이 북미지역에 새로 법인을 설립하거나,반대로 철수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관세 철폐로 현지공장 설립 필요성이 줄어드는 만큼 국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을 제기하기도 하지만,일선 기업들의 반응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해외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는 이유는 관세회피 외에도 인건비,물류비,환율,투자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며 "관세 유무를 기준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무한경쟁시대 실감날 것"

그렇다고 기업들이 한·미 FTA 타결에 따른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구경만 하겠다는 자세는 아니다.

그동안 북미지역 진출이 저조했던 기업에는 현지 시장 교두보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고,반대로 현지에서 맹렬하게 뛰고 있는 기업들에는 시장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 FTA다.

삼성은 한·미 FTA를 중국과 일본업체들 사이에 끼어있는 '샌드위치 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호탄으로 여기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 무한경쟁시대가 현실화하고 있는 징후들이 속속 나타날 것"이라며 "삼성은 국내 1등에 만족하지 않고 월드베스트 제품 수를 계속 늘려가는 글로벌 전략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35%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도요타 혼다 등 일본기업들과의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FTA 타결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무역의 빗장들도 손쉽게 제거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재 4.5%에 머물고 있는 점유율을 1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LG는 개방화된 시장환경 속에서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선진적인 경영관리가 성장의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북미시장의 특성에 맞는 브랜드 전략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가전제품들의 수출을 늘리고 철저한 SCM(공급망관리)을 통해 고객중심의 경영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SK는 해외사업을 공격적으로 하기 위해 설립한 SKI(SK International)를 중심으로 자원개발사업과 석유화학제품 판매 확대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물류기업들도 큰 기대

GS그룹에선 GS건설이 향후 미국 내 국가발주 공사의 입찰에 적극 참가하는 등 조달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진그룹은 단기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별로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교류 확대로 대한항공한진해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역시 아시아나항공금호타이어가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그룹은 중공업과 인프라코어를 앞세워 현지 수출을 늘린다는 계획이고 효성과 코오롱도 섬유 의류 자동차소재 등의 품목들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그러나 "FTA 타결로 인한 가격경쟁력은 일시적이며 결국 고부가가치제품의 개발·생산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일훈/이상열/장창민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