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화공단에서 전자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A사장(54)은 외국인 기술훈련생을 연구소에 채용했다가 낭패를 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중소기업들이 다 그렇지만 연구인력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영어도 잘하고 기술 지식도 있어 보이는 동남아 출신 연수생 한 명을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핵심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외국 경쟁 기업에 넘겼더라고요.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줬는데…."

A사장이 사태의 전모를 파악했을 때는 연수생이 회사를 그만두고 출국한 뒤라 처벌도 못했다.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해외 기업으로 전직한 것 같더군요. 다시는 외국인 직원을 연구소에 배치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외국인 연구인력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고급 외국인 인력은 기업들의 R&D 역량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편이 되지만 산업기밀 유출 측면에서는 잠재적인 위험도가 그만큼 커진다는 부담이 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해외에서 유치한 연구원이 연루된 산업기밀 유출 사건은 3건 정도.이 가운데 B사 사건은 평소 외국인 연구원을 세밀히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던 대표적 사례였다.

외국 연구원은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등한시하면서 일이 없는 휴일에도 출근,다른 직원들의 연구 성과를 집중 수집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회사측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검찰과 국정원은 외국인 연구인력 증가세를 고려할 때 앞으로 이 같은 범주의 사건이 늘어날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밀 보호 관점에서 볼 때 외국인 연구원 증가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선 자국 기업 등으로 이직하면서 산업기술을 빼나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반도체나 휴대폰,자동차산업 급성장의 이면에는 해외 일류 기업에서 일하다 귀국한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됐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연수생이 아닌 기초과학 및 첨단 기술 분야 고급 두뇌로 교수(E-1),연구(E-3) 및 기술지도(E-4)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외국 고급 인력은 지난해 1만명을 넘어섰다.

이미 들어와 있는 인력이나 다른 비자를 받은 인력까지 포함하면 기업이나 공공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외국인 연구요원은 어림잡아 2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무국적주의' 인재 채용을 표방하는 삼성그룹의 경우 국내 거주 외국인 직원 숫자가 1150명 수준이고 삼성전자 디지털연구소 등에 근무하는 외국인 연구원은 730명에 달한다.

SK도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그룹 전체로 960명 정도다.

외국인 연구원들의 출신 국가도 인도 러시아 중국 등으로 다양하다.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수사기관들이 외국인 전문인력 채용이 많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보안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연구인력 채용 때 헤드헌터를 통해 면밀히 이력을 확인할 뿐 아니라 안정된 국내 생활 지원과 체계적인 보안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미국은 아예 국가 차원에서 중국 등으로 고급 기술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들이 핵심 기술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구 참여 제한 기준을 시민권 보유 여부가 아니라 출생지 기준으로 강화하려다 좌절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중요 국책 연구 성과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7월부터 국가 연구기관의 모든 연구과제를 '보안' 등급과 '일반' 등급으로 구분한 뒤 보안 등급 과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외국인 참여를 제한하기로 방침을 정해 주목된다.

홍국선 서울대 공과대 교수는 "해외의 고급 인력 활용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고 외국 인력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면서 "다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선 치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