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휴대폰 회로도와 부품 배치도를 해외로 유출하려다 2005년 3월 검찰에 적발된 S사 전 연구원 이모씨와 컨설팅업체 직원 장모씨.미수에 그쳤지만 이들의 계획대로 국내 연구인력을 해외에 끌어들인 뒤 휴대폰 공장까지 설립했더라면 1조3000억원대의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기술 유출에 따른 예상 피해액이 많게는 건당 수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는 데 반해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소되더라도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법 연감에 따르면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돼 2005년 1심 판결이 내려진 130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1명(8.4%)에 불과했다.

2004년에도 1심 판결을 받은 138명 중 유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10명(7.2%)이었다.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실형 선고율이 낮은 데 대해서는 법원과 검찰 등 수사 당국 간 시각차가 확연하다.

법원은 예상 피해액을 양형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인 데 반해 수사 당국과 업계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심 쟁점은 피해액 산정의 타당성 여부다.

통상 기술 유출 사건(미수 포함)이 발생했을 때 국정원 등이 발표하는 예상 피해액은 해당 기업이 직접 산정한 것이다.

기업들은 주로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연구비뿐 아니라 그 기술이 외부로 유출돼 상품화가 이뤄졌을 경우를 가정한 뒤 '향후 3~5년간 입을 매출 손실과 기타 파급 손실'까지 포함해 피해액을 산정한다.

유출 기술이 첨단일수록,기업의 매출 규모가 클수록 피해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

S사가 주장했던 예상 피해액도 투자비 26억원에다 기술이 빠져 나갔을 경우 △휴대폰 및 파생부품 개발비 109억원 △향후 5년간 예상 매출 손실 5300억원 △(기술 유출에 따른) 휴대폰 가격 하락 손실 7700억원 등이 포함됐다.

법원은 이런 피해 예상액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으로 판단했다.

연구원들도 기밀 유출로 인한 피해금액 추정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법원 관계자는 "기소된 사건들은 대부분 기술 유출에 실패해 넘어온 경우가 많다"면서 "실제 피해액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전과도 없는 피의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가 제품 생산에 나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내 하청업체나 동종 업체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액은 더 커질 수 있다"며 "피해액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고인들이 진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도 법원이 온정적인 판결을 내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현행법상 영업비밀은 비공지성,경제성,비밀 유지성을 갖춰야 하는데 실제 공판 단계에서 이에 대해 진술해줄 참고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검찰 관계자는 "결국 해당 기술이 영업비밀인지 아닌지를 진술해줄 사람은 피의자의 회사 동료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 대부분이 진술에 소극적인 게 문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