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경제학 >

국부(國富)의 원천은 무엇인가? 부존자원과 기후조건을 떠올릴 수 있지만 해답은 아니다. 경제도 사람이 꾸려나가기 때문에 '인구의 질(質)'이 풍요와 가난을 가르게 된다. 그러나 이는 동의반복(同意反覆)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이 높으니까 부자라는 식이다. 부의 원천은 사회 구성원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부의 원천은 종국적으로 '제도'의 문제로 귀착되며,제도는 '가치와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풍요와 빈곤의 엇갈린 길을 가게 하는 것은 그 사회의 '가치와 이념'인 것이다.

프랑스는 여전히 경제규모로 세계 6위,유럽 2위의 경제대국이며 '유럽 50대 기업' 중 10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앞날이 밝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가장 경제 성장이 정체된 나라다. 성장이 정체된 만큼 높은 실업률과 만성적 재정적자가 뒤따랐다. 1981년 세계 7위였던 프랑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6년 17위로 급전직하했다.

이 같은 결과는 주 35시간 노동,관대한 실업급여 등 사회적 연대를 강조한 '프랑스 모델'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랑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83%를 넘는 기록적인 투표율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시장 대(對) 국가,성장 대 분배"라는 정책대결은 다름 아닌 '가치와 이념'의 대리전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의 사회주의 성향은 그 뿌리가 깊다. '프랑스 혁명'에서 물려받은 평등과 박애의 온정적 이상주의,그리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국가개입주의'로부터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합리주의'에 있어 인간 이성(reason)은 "대문자 R로 시작하는 이성"으로 은유되고 있다. 이는 빈틈없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무한신뢰를 의미한다. 프랑스는 정부조직을 통한 이성에 기초한 '지적(知的) 설계'로 시장을 관리하고 사회적 형평을 꾀할 수 있다는 강한 좌파적 신념을 가져왔다.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프랑스에서 '시장 친화적' 공약을 내건 사르코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선거구호는 명쾌했다. "더 일하고 더 버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더 일하는 사람이 높은 소득을 누릴 수 있도록 '유인'(誘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자조(自助)하는 개인을 국가가 돕겠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사르코지를 지지함으로써,주35시간 근로라는 달콤한 휴식 대신 "더 일하면 더 벌 수 있는" 근로사회를 선택했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 것이다.

유권자들이 '프랑스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면서,노동시장 보호,국가 개입 확대 등을 통해 고용 등 사회안전을 꾀해야 한다는 루아얄 후보를 외면한 이유도 분명하다. 국가의 적극 개입을 골자로 하는 루아얄식 처방에 대해,"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좌파 일각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프랑스의 가치'가 붕괴된 데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국가 개입주의 좌파적 이념이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마저도 발붙일 수 없음을 이번 선거가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세금과 공공지출을 늘려 국민을 보살피고 규제를 통해 시장을 계도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좌파 세력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개입주의와 평등주의의 미몽(迷夢)에 빠져 있는 좌파세력은 프랑스마저 '큰 시장,작은 정부'를 선택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자유의 외연을 넓히는 우풍(右風)은 우연일 수 없다.

(사)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