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00만시대‥사각지대 아이들] (下) 냉가슴 앓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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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시집온 메이안씨(32·경기도 안산·가명).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됐지만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은 자신이 없다.
2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줄 수 없어서다.
한번은 받아쓰기 숙제를 함께 하다 자신의 발음이 이상하다며 아이가 짜증을 냈다.
"엄마도 모르면서…"라는 아이의 말에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왜 결혼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10만명에 육박하는 결혼 이민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한다.
2세들의 국적도 법적으로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보통 한국 엄마들도 애를 키우기 힘든 한국에서 한국말마저 서툰 외국인 엄마에게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결혼 이민자 부부 1177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는 한국어 교육(39.7%)이었다.
당장 생활하는 것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의 언어 미숙이 자녀 교육에 장애가 된다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정작 한국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1.8%에 그쳤다.
남성의 경우 7.9%에 불과했다.
정부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결혼 이민자를 위한 한국어 교재를 낸 것은 2005년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초급 교재였을 뿐.수준별 교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서야 올 4월 기초(첫걸음) 교재와 중급 교재를 선보였지만 아직도 고급 수준 교재는 없다.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종교단체나 민간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도 미흡하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한영숙 실장은 "1994년 문을 연 뒤 결혼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쳐 오면서 몇 차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 이민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비단 서툰 한국말뿐이 아니다.
한국인 남편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극심한 고립감에 빠진 외국인 엄마도 많다.
스리랑카 출신인 타샤씨는 아들이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당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해 학교에 찾아갈 엄두가 안난다.
그녀는 "아이 아빠가 나서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쳐본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집에서는 아예 외국말을 못쓰게 하는 남편들도 많다"며 "지금 가정 안에서 외국인 엄마는 '외딴섬'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시안적인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외국인 지원단체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결혼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화'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그러다 보니 한국인 남편이 외국인 아내를 배려하거나 외국인 엄마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경제적 빈곤은 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 결혼 이민자 부부 945쌍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53%는 월 평균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1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학교나 민간단체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보내기 힘든 결혼 이민자 가정이 많다"며 "가난하니까 교육을 잘 못시키고 그것이 다시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가정의 경우 서툰 한국말이나 경제적 빈곤 외에 강제 추방 공포까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모하메드 알리씨(36·서울)는 기자에게 "아이들을 한국에서 대학까지 보내는 게 소원인데 내가 돈도 못 벌고 언제 한국에서 쫓겨날지 몰라요.
나라에서 도와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꽃집에 한 달 120만원을 받고 일하러 다닌다. 아내는 몸이 아파 집에 누워 있다.
병원비가 만만치 않지만 불법 체류 신세라 의료보험은 꿈도 못꾼다고 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42만여명 가운데 불법 체류자는 42%인 18만7000여명(2006년 말 기준)에 달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들에게도 '불법 체류 딱지'가 따라붙는다.
한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을 본국에 돌려보내는 이주노동자도 꽤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외국인 지원단체인 지구촌사랑나눔 이선희 부대표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겉모습만 다를 뿐 속은 사실상 한국인"이라며 "막상 본국에 돌아가면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이 더 커지고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
2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줄 수 없어서다.
한번은 받아쓰기 숙제를 함께 하다 자신의 발음이 이상하다며 아이가 짜증을 냈다.
"엄마도 모르면서…"라는 아이의 말에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왜 결혼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10만명에 육박하는 결혼 이민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한다.
2세들의 국적도 법적으로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보통 한국 엄마들도 애를 키우기 힘든 한국에서 한국말마저 서툰 외국인 엄마에게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결혼 이민자 부부 1177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는 한국어 교육(39.7%)이었다.
당장 생활하는 것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의 언어 미숙이 자녀 교육에 장애가 된다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정작 한국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1.8%에 그쳤다.
남성의 경우 7.9%에 불과했다.
정부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결혼 이민자를 위한 한국어 교재를 낸 것은 2005년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초급 교재였을 뿐.수준별 교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서야 올 4월 기초(첫걸음) 교재와 중급 교재를 선보였지만 아직도 고급 수준 교재는 없다.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종교단체나 민간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도 미흡하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한영숙 실장은 "1994년 문을 연 뒤 결혼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쳐 오면서 몇 차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 이민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비단 서툰 한국말뿐이 아니다.
한국인 남편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극심한 고립감에 빠진 외국인 엄마도 많다.
스리랑카 출신인 타샤씨는 아들이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당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해 학교에 찾아갈 엄두가 안난다.
그녀는 "아이 아빠가 나서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쳐본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집에서는 아예 외국말을 못쓰게 하는 남편들도 많다"며 "지금 가정 안에서 외국인 엄마는 '외딴섬'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시안적인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외국인 지원단체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결혼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화'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그러다 보니 한국인 남편이 외국인 아내를 배려하거나 외국인 엄마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경제적 빈곤은 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 결혼 이민자 부부 945쌍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53%는 월 평균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1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학교나 민간단체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보내기 힘든 결혼 이민자 가정이 많다"며 "가난하니까 교육을 잘 못시키고 그것이 다시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가정의 경우 서툰 한국말이나 경제적 빈곤 외에 강제 추방 공포까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모하메드 알리씨(36·서울)는 기자에게 "아이들을 한국에서 대학까지 보내는 게 소원인데 내가 돈도 못 벌고 언제 한국에서 쫓겨날지 몰라요.
나라에서 도와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꽃집에 한 달 120만원을 받고 일하러 다닌다. 아내는 몸이 아파 집에 누워 있다.
병원비가 만만치 않지만 불법 체류 신세라 의료보험은 꿈도 못꾼다고 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42만여명 가운데 불법 체류자는 42%인 18만7000여명(2006년 말 기준)에 달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들에게도 '불법 체류 딱지'가 따라붙는다.
한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을 본국에 돌려보내는 이주노동자도 꽤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외국인 지원단체인 지구촌사랑나눔 이선희 부대표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겉모습만 다를 뿐 속은 사실상 한국인"이라며 "막상 본국에 돌아가면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이 더 커지고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