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올즈는 1954년 생쥐 실험을 통해 뇌의 특정부위에 쾌감중추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쥐의 뇌에 미니전극을 붙인 다음 레버를 누르면 뇌에 자극이 가해지도록 했더니 먹이도 마다하고 그것만 누르더라는 것이다.

베르베르의 소설 '뇌'는 올즈의 이런 발견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의사이자 체스 기사인 핀처 박사가 세계적 관심사였던 컴퓨터와의 체스 대결에서 승리한 직후 사망했다.

함께 있던 톱모델 나타샤가 나서서 범인이라고 자백했지만 어딘가 미심쩍다.

추적하고 보니 핀처는 뇌 속에 쾌감중추 자극용 전극을 심었는데 순간적으로 자극이 너무 커져 화를 불렀다는 얘기다.

거꾸로 나타샤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쾌감중추를 제거했다.

타이르고 협박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안되고 급기야 자살하려 들자 의사인 어머니가 최후수단을 썼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털어놓는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술이 실패해 딸이 죽거나 정신병에 걸린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나타샤는 그러나 냉소적으로 내뱉는다.

"수술로 약물에 대한 욕구는 해소됐지만 대신 다른 의욕도 사라졌다.

어떤 일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쾌감중추를 없앰으로써 헤로인의 마성(魔性)에서 탈피,정상적인 삶을 찾았지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희로애락의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고백이다.

캐나다 맥길대와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기억 속 아픔을 지우는 약을 찾았다는 소식이다.

교감신경 억제제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을 이용,사고나 성폭행을 당한 뒤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대에선 여러 기억 가운데 특정한 것만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도 한다.

아픈 기억은 사람을 망가뜨리기 쉽다.

생각날 때마다 두려움과 좌절감이 몸과 마음을 휘감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 속 아픔을 없앨 수 있다면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찾기가 한결 수월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에서 보듯 과학은 늘 양날의 칼이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고통은 때로 살아있음의 증거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