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칼럼 ] `허풍`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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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사회에서는 가짜박사,가짜인생들이 '커밍아웃'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신데렐라처럼 화려한 마차를 타고 무도회를 다니는가 하면 이카루스처럼 하늘을 높이 날아 뭇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사람들이다.
가면이 하루아침에 벗겨지니,명성과 인기는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돌팔매만 날아온다.
가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 면허증이 없어도 용하게 병을 고치는 돌팔이 의사나 학위가 없어도 실물에 밝은 재주꾼들은 '진짜 같은 가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삶을 사는 이유는 성공에 관한 유혹이 있어도 '차마'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버릴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자신의 삶을 속여온 가짜는 당돌하고도 맹랑한 존재다.
'신데렐라'가 좋다고는 하나 '가짜 신데렐라'로 행세할만큼 주변의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살았으니 얼마나 맹랑한 존재인가.
허나 '언제 들통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당돌하고 맹랑한 존재가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도대체 겁이 없다.
100년 가는 정당이라며 자랑을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 당을 만든 장본인들은 탈당을 하고 '소통합'이니 '대통합'이니 하며 입씨름을 하고 있다.
통합신당의 포장만 화려하게 하면 자신들의 이력(履歷)은 세탁이 되는 것일까.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부'라고 주장한 사람들과는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移轉) 위헌결정을 했음에도 그것이 잘못됐고 청와대와 국회를 행정도시로 옮겨야 한다고 강변하는 대통령도 있다.
입으로는 국리민복과 미래의 대한민국을 구상하겠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주민등록초본 공개같은 사소한 것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은 또 무엇인가.
'대선의 해'니 허풍이 없을 수는 없다.
신혼부부들에게 새집을 지어주고 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유치원 보육비를 부담해주겠다는 약속인들 왜 못하겠는가.
이제 물로 가는 자동차를 만들어 나눠주겠다는 약속이 나올 차례다.
포장만 요란하고 실속은 없는 선심공약들을 남발한들 큰 손해날 것은 없다.
남이 경제성장 7% 하겠다는데,나라고 7%로 맞추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중산층과 서민들이 모두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있고 사막도 없는데 오아시스 같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소리도 있다.
이 모두가 맨 정신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약속일 터이다.
겁이 없는 행동들 가운데서도 단연 압권은 대선후보자들의 난립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몇 번 인기있는 발언을 해 언론에 이름이 났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보라.후보군(群)이 둘 정도로 정리됐다고 볼 수 있는 야당에 비해 여당은 십수명이나 된다.
도대체 무얼 믿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가.
지지율이 높으면 높은 대로 우쭐해 착각에 빠진다고 하지만,지지율이 낮으면 낮은 대로 착각에 빠지는 것인가.
지지율이 높은 한나라당 후보들은 당내 경선만 이기면 대선승리는 '떼논 당상'이라고 해 "자신의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몰두하고 있다.
한데 지지율 5%대도 넘지 못하는 후보들이 저돌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이제 낮은 지지율이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믿기 때문일까.
정말 한국의 정치인들은 겁이 없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도 곶감을 무서워한다는데,무얼 믿고 중책 중의 중책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가.
아무래도 적수공권(赤手空拳)에서 꿈을 이룬 노무현 대통령이 모델이 된 것 같다.
한 사회가 양식있는 사회가 되려면 '차마' 못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왜 '차마' 못하는가.
하늘이 내려다보고 헌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돌한 행위들이 자행되는 이유는 신은 죽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끼었으며 헌법은 지킬 것보다는 고칠 것이 많다고 믿기 때문일까.
그러다보면 큰 코 다칠 날이 온다.
하고 싶어도 '차마'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는 '정도(正道)의 사회'가 될 것이다.
朴孝鍾 < 서울대 교수·정치학 >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