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죄수 석방을 시작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는 탈레반 측 대변인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한때 석방 협상을 30일 오후 8시30분까지 연장했다가 다시 이틀간 연장한다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보도가 나오면서 극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백종천 대통령 특사도 현지에서 2~3일 더 머무르기로 해 어떤 형태로든 타결의 계기가 마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첫 희생자인 배형규 목사가 살해됐을 때도 협상시간 연장 설이 나돈 직후여서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런 불안감이 추가 희생자가 나오면서 현실화된 것이다. 실제 탈레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유수푸 아마디가 협상 연장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아 안도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협상 소식에 관한 다양한 외신 보도가 있었지만 취재원이 불투명한 데다 보도 내용도 엇갈려 사실을 추적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아마디의 발언이 사실에 근접,협장 연장 보도가 나올 때도 국내 언론은 아마디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날 한국시간으로 31일 새벽 2시 직전 아마디는 AFP와 로이터 통신을 통해 '성신 (Sung Sin)이라는 한 남자를 추가로 살했다고 전해 억류된 인질의 안전을 고대하던 유가족들의 통곡으로 빠뜨렸다. 살해 시간은 31일 새벽 1시로 알려졌다. AK-47로 쐈다고 아마디 대변인이 밝혔다.

이날 보도된 아마디의 살해 이유는 탈레반을 석방하라는 자신의 요구가 묵살됐다는 것이다. 아마디는 여러 차례 협상 시한을 연장하면서 기회를 줬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협상 시한 연장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프간 정부의 협상시한 연장을 탈레반은 명백히 무시한 것이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겨우 인질을 계속 살해할 우려 마저 높아졌다.

살해자는 29살의 심성민씨로 추정된다. 아마디가 살해했다고 주장한 남자의 영문 이름과 가장 비슷하다. 심씨는 일부 국내언론과 통화한 이지영씨(36)와 같이 가즈니주 산악 지역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에 따르면 심씨는 여자 인질 3명과 함께 민가에 억류돼 있었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는 그동안 "여자 16명부터 풀어라. 그전엔 협상도 없다"며 탈레반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그럼에도 알자지라 방송은 한때 협상단에 포함됐던 의원 두 명이 아예 수도 카불로 철수해버려 불안감이 감돌았다. 이 방송에 따르면 아프간 정부 협상단은 "죄수와 인질 맞교환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아프간 정부는 납치범들에게 여성 인질들을 조건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 다음부터 납치세력의 퇴로를 놓고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탈레반 무장세력은 여자 인질을 전원 석방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여성 인질들이 모두 풀려나면 군사 작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진다.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는 언론을 통해 인질을 세 차례에 나눠 석방하겠다고 주장했다. 수감자 8명이 석방되면 인질 8명과 교환할 것이며,여자와 남자를 섞어서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요구 조건에 관해선 "죄수 석방과 한국군 철수,두 가지 요구에 변함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인질들이 민가에 분산 수용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도 납치세력이 군사작전을 의식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민간인을 볼모로 삼아 작전을 저지하겠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