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가슴을 쓸고가는 계절이다.

둔감한 사람이라도 몇 장 남지 않은 달력과 시들어가는 나뭇잎을 보며 마음 한 쪽에는 고독이 배이고 회상과 상심이 밀려올 듯한 분위기다.

사회 구성원 모두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감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신의학은 고독이나 외로움을 질환으로 다루지 않는다.

고독과 외로움이 극심해지면 우울증이 될 수 있으나 대개 일과성이어서 스트레스의 하나 정도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신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스티븐 콜 교수는 '게놈생물학(Genome Biology)'지에 대인 접촉이 거의 없고 사회적 소외감 등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백혈구 내 특정 유전자들이 활성화돼 과도한 염증을 유발,조직을 손상시키고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 등과 싸우며 면역항체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활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콜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생명 유지에 기본적인 유전자 분포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많은 사람과 얕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한두 사람이라도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외로움이 심장병 등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최근 네덜란드 연구팀은 8000명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외로움과 유전자의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으나 어떤 유전자인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외로움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어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과 즐겁게 지내지 못해 느끼게 되는 탈핍성(脫乏性) 스트레스의 일종"이라며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이 많이 발병하고 회복도 느려지는 연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강섭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고독감으로 뇌에 자극이 부족하면 뇌의 혈류량 활동성이 감소하고 장기화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며 "외로움과 우울증은 명확히 다른 성격인 만큼 정신과에서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경우에만 약물·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은 우울함,절망감,흥미 저하가 나타나면서 △식욕 또는 체중의 현저한 증감 △수면의 현저한 증감 △초조함 또는 일 처리 속도의 지연 △기력 상실 또는 피로감 △부적절한 죄책감 또는 자기비하나 과도한 책임감 △집중력 저하 또는 비정상적 우유부단함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등에서 3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다.

요즘 같은 계절에 느끼는 고독감은 대부분 일조량 감소에 따른 일과성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외로움을 마냥 가볍게만 볼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노인심리학회지'에 발표된 프랑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이고 특히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정호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아가 약한 사람이 외로움을 더 타게 마련"이라며 "고독감이 만성적으로 지속돼 고통스러울 때는 자아를 객관화하는 치료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아를 심층적으로 파악·발견하는 '마음챙김' 명상법이나 자신의 왜곡된 인지를 교정하는 '인지요법'이 필요하다는 권고다.

아울러 '경계선 인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평생 외로움 속에 살아가게 하므로 자신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변증법적 행동치료'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질환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면 상심 또는 분노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친밀해지려 다가오면 거부하려 하며 자신의 행동으로 남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가운데 가족력이 있거나 성장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우울증이나 경계선 인격장애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고독을 극복하는 방법


1.외롭고 우울하다고 자꾸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여럿이 어울리는게 힘들어도 최소한의 대인관계의 끈은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그저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자'라는 마음을 갖고서라도 사교자리에 나가는게 좋다.

2.억지로 고독함을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일시적 고독은 오히려 인생을 살찌우는 보약이 된다.인위적인 극복 노력은 스트레스만 가중시킨다.

3.고독감이 없어야만 한다는 마음가짐을 바꾼다.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4.자신을 먼저 사랑할줄 알며 종교나 취미생활에 정진한다.

5.인생은 투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의 행복은 내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6.많은 수의 친구보다는 깊은 교우관계를 추구한다.

7.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혼자 즐길 것을 해본다.독서는 외로울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8.햇볕을 많이 쬐고 많이 걷고 밝은 옷을 입는다.

9.평온한 풀밭과 호수를 연상하면서 심호흡을 한다.

10.고독이 지나치게 만성화되면 전문치료법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