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불편한 진실'의 진실과 오류 논란


앨 고어 노벨평화상 수상 불구 영국 법원은 '과학적 오류' 판결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59)에게 올해는 정계 은퇴 후 최고의 해인 듯하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을 제작,지난 2월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7월에는 5대륙 7개국에서 24시간 이어진 초대형 환경 콘서트 '라이브 어스'를 개최했다.

존 본 조비,보노 등 유명 스타들이 무대를 장식했고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앨 고어'라는 연호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지난 12일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함으로써 앨 고어는 '거물급 정치인'에서 '환경 운동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조지 부시 후보에게 패배한 아픔이 있다.

득표 수에서 앞섰으면서도 주(州)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대통령 직을 뺏겼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노벨상으로 설욕한 셈이다.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는 환경 운동가 앨 고어의 생각과 주장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어가 직접 출연해 제시한 영상과 자료들은 생생함과 구체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이름으로 나온 책은 아마존닷컴 등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우리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도 출간됐다.

그런데 최근 이 '불편한 진실'이 '불편한 입장'에 처했다.

영국 정부가 학교에 이를 교재로 배포하려다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친 것.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지난 11일 영국 런던의 1심 법원은 '불편한 진실'에 9가지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는 판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따옴표 안의 앞부분이 문제가 된 고어의 주장이며 뒷부분은 재판부의 반박 내용이다.

(1)"태평양 지역의 산호섬이 온난화로 인해 가라앉고 있다."

―침수로 인해 사람들이 피난하고 있다는 사례는 아직 없다.

(2)"대서양으로 이동하는 걸프 해류가 온난화 때문에 멈출 수 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해류의 속도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미래에 움직임이 중단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3)"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바다 수면이 20피트 이상 높아질 것이다.

그린란드와 북극 서부는 잠길 것이다."

-이는 불필요하게 공포를 조장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1000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4)"65만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과 온도 추이를 그래프로 비교해 보면 '완벽하게 맞는다'."

-이산화탄소 규모와 온도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프 비교만으로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다.

(5)"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온난화 때문이다."

-인류가 유발한 기후 변화 때문에 킬리만자로 산의 눈이 녹는다는 주장에는 아직 근거가 없다.

(6)"아프리카 차드 호수가 거의 고갈된 것은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온난화를 분명한 원인으로 지목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7)"온난화로 빙산이 줄어들자 이를 찾던 북극 곰이 장시간 헤엄 치다 죽은 채 발견되고 있다."

-최근 익사한 채 발견된 북극 곰은 단 네 마리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폭풍 때문에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8)"바닷속 산호초의 탈색은 주로 온난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에서 비롯됐다."

-기후 변화로 인한 것인지,아니면 과도한 어획 또는 오염 때문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9)"2005년 미국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불편한 진실'의 문제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강조하려다 일부 주장에서 논리적 비약을 빚은 점이었다.

어떤 현상을 확실한 근거 없이 지구 온난화의 사례로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북극 곰의 죽음,산호초의 백화 현상 등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것인지,우연한 자연 현상이나 환경 오염 등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특정 지역이 가까운 미래에 침몰한다는 내용은 과장에 속한다.

과도한 공포를 유발해 환경 문제에 대한 이성적 사고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불편한 진실'을 학교에서 교재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방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도록 반대편의 목소리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BBC의 로저 하라빈 환경분석가는 최근 판결 결과를 놓고 "기후 변화의 현실에 대해 많은 이들의 논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처럼 환경 이슈의 핵심을 차지하는 지구 온난화 효과를 둘러싸고 과학계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예를 들어 온난화가 '실재하는 위협인가 아닌가''인간이 일으킨 것인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난제다.

복잡한 자연과 인간 활동들을 동시에 변수로 넣고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것은 때로 불가능에 가깝다.

객관적 규명이 어렵다 보니 일방적 주장이 더 쉬워 보이는 게 환경 분야다.

논란 속에서도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나서자'는 앨 고어의 행보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또 다른 대규모 환경 캠페인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환경 정책에 무관심했던 현 부시 대통령이 앨 고어의 노벨상 수상으로 '좌절'을 느꼈을 거라 꼬집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7년의 재임기간 중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동참을 거부,국제적 비판을 받아 왔다.

분명한 것은 환경 문제가 노벨평화상의 주제로 부상할 정도로 중요 이슈가 됐다는 점이다.

올해 노벨위원회는 "지구의 자원을 차지하려는 과도한 경쟁이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며 그 결과 폭력적인 갈등과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다"며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평화유지 활동과 연계시켰다.

이처럼 떠오르는 환경 논의에 소외되기 싫다면 (책이든 다큐든)'불편한 진실'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의 주장 앞에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꽤 흥미로운 지적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