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 이어 채권시장까지 난기류에 휩싸였다.

연일 주요 채권 금리가 뜀박질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이 불안한 가장 큰 이유는 시중 뭉칫돈이 펀드로 옮겨가면서 채권시장의 수급이 악화된 탓이 크다.

은행의 채권(은행채) 발행 압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소화할 만한 자금은 태부족인 상황이다.

최근엔 은행발(發) 금리 상승에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도세까지 가세하면서 채권 금리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에 따른 세계 금융시장 위축 여파로 국내 금융사와 기업들의 해외 차입 여건도 악화됐다.

연말 자금 시장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좇아 은행예금에서 투자상품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단기간의 자금 쏠림현상은 자금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은행업계와 증권업계는 채권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한 요인을 달리 분석하고 있다.

은행은 자본시장의 쏠림 현상 탓을 하고 있다.

반면 증권업계는 은행의 자금 운용 행태를 문제삼는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해 고객 자금을 유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발행에만 의존한 채 대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20일 증권업협회가 고시한 91일물 CD 금리는 연 5.45%로 또다시 0.03%포인트(3bp) 올랐다.

전날 0.03%포인트 급등한 것을 비롯해 지난 12일 상승세를 재개한 후 무려 0.10%포인트 올랐다.

CD 금리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채권 금리도 연중 최고치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미래에셋'이 금리 상승 주범(?)

최근의 금리 상승 배경에는 은행예금에서 증시로 자금이 급격히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무브'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올 들어 주식형펀드와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 등으로 은행예금이 빠져나가자 은행들은 CD와 은행채 발행을 통해 부족한 대출 재원을 조달해 왔다.

올 들어 자산운용사의 주식형 펀드(국내·해외 포함)로는 56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16일 현재 주식형펀드 잔액은 102조원에 달한다.

최근 증시가 조정을 받고 있지만 주식형펀드로의 자금 유입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펀드'에는 설정된 지 보름 만에 4조원 이상이 몰렸다.

은행의 월급통장 대용으로 부상한 증권사 CMA로도 올 들어 17조원이 유입됐다.

반면 은행의 예금성 수신(실세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 잔액은 20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갔다.

은행들이 연 6%가 넘는 특판예금과 신상품들을 내놨지만 이미 10~15%대의 수익률을 경험한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역부족이다.

주식형펀드 열풍엔 펀드 판매수수료를 벌기 위해 은행들이 주식형펀드 판매에 발벗고 나선 것도 한몫했다.

은행에서 예금은 빠져나가는데도 대출 증가세는 좀체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은행권의 원화대출은 10월 말까지 81조원 늘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심해지자 은행들이 중기대출 경쟁을 벌이면서 중기대출 잔액은 60조원 급증했다.

예금으로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대출로 나가는 돈은 늘어나다 보니 은행들은 CD나 은행채 등 시장성 상품을 통한 자금 조달을 확대했다.

은행들이 CD나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금리 오름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7,8월에 한국은행이 유동성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콜금리 목표치를 올린 영향도 있지만 최근의 금리 상승은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에서 초래된 측면이 강하다는 게 자금시장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CD나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시장에 공급 물량은 넘치는데 투자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금리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리 추가 상승 공감대 확산

통상 자산운용사의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형 펀드들이 CD나 은행채에 투자하는데 여기서도 자금이 주식형펀드로 빠져나가 자금이 달려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못 따라가니 채권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하는 것이다.

특히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당장 나아질 것 같지 않아 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선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이유가 적어진다.

금리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다소 비약이 있을 순 있지만 사실상 은행의 CD와 은행채 발행 급증,이에 따른 금리 인상은 '미래에셋'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은행채 스프레드 사상 최고

이처럼 은행채 공급이 넘쳐나면서 은행채 1년물과 국고채 1년물 간의 스프레드(금리 차)는 2000년 채권시가평가제가 도입된 이후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국고채 대비 은행채 1년물 스프레드는 19일 현재 0.41%포인트(41bp)까지 벌어졌다.

은행채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회사채 3년물과 국고채 3년물 간 스프레드도 0.63%포인트(63bp)까지 높아졌다.

CD 금리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가 되기 때문에 CD 금리 상승은 곧바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은행들은 CD 및 은행채 발행 급증에 대한 감독당국의 '경고'가 이어지자 올 들어 해외 채권 발행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파장이 확산되면서 해외기채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금 조달 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을 고려해 대출 자체를 줄이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은행발 금리 상승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