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담보대출 등에서 한정된 고객을 놓고 금융사 간 유치 경쟁이 심화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2005년 5월13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국내의 좁은 시장에서 주택담보대출이나 중소기업대출만을 놓고 경쟁하지 말고 힘들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2007년 6월27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내 은행의 외형 부풀리기식 영업 행태에 대한 질타는 수년 전부터 당국자들에 의해 반복돼 왔다.

가계대출,중기대출 등 주기적으로 한 방향으로 쏠리는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이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자금 흐름을 왜곡시키는 등 금융시장 불안 요인을 키운다는 것이다.

최근 은행들이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도 이런 쏠림현상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예금에서 투자상품으로 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본격화된 가운데 은행들이 한꺼번에 대출 경쟁에 필요한 자금을 채권 발행으로 조달하려다 보니 채권 금리가 급등하는 등 채권시장이 요동치는 현상이 빚어졌다.

채권 금리 상승은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로 연결될 뿐 아니라 대출금리 인상→가계·중소기업 부담 가중→은행 건전성 하락 등 총체적인 금융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인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금융팀장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올라가고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간 공적자금을 넣어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묻지마' 외형 경쟁

올 들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침체되자 중소기업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려왔다.

올 3분기까지 중기대출 증가액은 △국민은행 10조원 △신한은행 9조4000억원 △우리은행 7조원 등 34조8000억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25조5000억원)에 비해 36% 늘었다.

지난달에도 중기대출은 8조원 이상 증가해 2000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모든 은행이 가계대출 확대에 주력했고 그 결과 중기대출은 위축됐었다.

임승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은행들이 외형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돈벌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은행업은 예대마진을 먹는 장사로 대출을 늘리면 수익이 커져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수익성보다 외형을 늘리는 데 집중해왔다.

무리한 대출이 이뤄졌다는 것은 수치에서 드러난다.

국민은행의 원화 총대출금 잔액(11월28일 기준)은 152조9660억원으로 총수신 잔액(148조7434억원)보다 4조2226억원 많다.

지난해 말엔 총수신 145조7319억원,원화대출 133조3771억원이었다.

올 들어 수신은 불과 3조원 가량 증가했지만 대출은 20조원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경쟁을 하다 보면 리스크 관리가 안 돼 2∼3년이 지나면 연체율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반드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머니 무브' 현상으로 저원가성 예금이 이탈하면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말 2.64%에서 3분기 2.38%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대출재원을 은행채 CD 등 시장성에서 조달하는 바람에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는 자산 100억달러 이상인 미국 상업은행의 상반기 NIM(3.18%)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해외 진출 등 새 사업모델 찾아야

이 같은 은행업의 위기는 예고돼 왔다.

머니무브 현상은 선진국에선 20여년 전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은행은 최근 수조원씩 수익을 내면서도 위험 관리나 새 수익원 확충보다는 외형 불리기에 치중해왔다.

한재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형 경쟁 그 자체보다는 위험 관리 없이 대출을 확대한 것이 문제"라며 "현재의 자금난은 요구불예금이 빠지는 사태를 대비하지 못한 은행의 안일함이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즉 머니 무브 현상 속에 예금이 이탈하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보다 손쉽게 은행채나 CD 발행을 늘린 것이 자금난을 부른 것이다.

이창용 서울대 교수(경제학과)는 "예금이 조금씩 빠져나갈 때 대출자산의 일부를 유동화시키는 등 은행들이 몸집을 키우면서 관리 능력도 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더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부터 머니무브를 경험했던 미국 은행들은 대출 자산을 유동화함으로써 예금 비중이 하락함에도 대출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자산경쟁 탓에 자산을 줄이는 유동화에 소극적이었다.

신인석 중앙대 교수(경영대)도 "지금까지는 가계대출과 수수료 수입이 은행 수익을 충당해왔지만 이제 새 사업모델이 필요하다"며 "해외 진출 등 씨티그룹처럼 지주회사 차원에서 새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