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權純旴)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2000년대 전반 세계경제를 뜨겁게 달궜던 유동성 파티가 서서히 마감되고 있다.

그린스펀의 표현대로 5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넘쳐 나는 유동성이 전 세계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석유를 비롯한 원자재시장을 휩쓸고 다니며 자산가격을 크게 올려놓았다.

지난 4~5년간 주택가격이 2배 이상 오른 지역이 부지기수고,신흥주식시장은 주가가 4배 이상 올랐으며,배럴당 20달러대이던 국제유가는 여차하면 100달러에 오를 기세다.

그러나 흥청망청하던 유동성 파티를 뒤로 하고 이제 파티비용을 지불하라는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첫 번째 청구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먼저 날아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금융부실 규모가 최소 2000억달러가 넘고,많게는 5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대형 투자은행들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로 상각해야 할 부실규모가 1000억달러를 크게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지만 지금까지 부실 상각 규모는 400억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투자은행들의 실적이 급전직하 악화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2005년과 2006년에 크게 늘어났는데,대출 2년 후부터 이자지급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어 2008년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동성 파티의 두 번째 청구서가 날아온다면 그것은 주식시장이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직접적으로는 금융회사와 주택관련 주식의 주가하락을,간접적으로는 금융불안 확산으로 인한 주가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풍부한 유동성을 등에 업고 과열양상을 빚어온 신흥시장의 주가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전 세계 주식시장은 아직까지는 상당히 선전(善戰)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주식시장이 계속 선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주식시장이 기대 이상으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전히 전 세계 금융시장에 상당 규모로 남아있는 과잉유동성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금리인상으로 2005년 말을 정점으로 과잉유동성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워낙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과잉 상태다.

문제는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서 언제까지나 유동성 과잉상태를 방치해 놓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중국은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서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디플레이션 수출국이 아니며 오히려 인플레이션 수출국으로 바뀔 조짐이다.

미국도 금리인하에 달러화 약세,고유가 등 삼중(三重)의 물가상승 재료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현재화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급한 마음에 금리를 내리고 있지만 물가상승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면 곧 바로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다.

결국 금융부실과 금융불안의 확산,인플레이션 압력의 상승 등은 유동성에 의존해 가격이 상승한 주식시장에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유동성 파티가 길었던 만큼 이를 정리하는 데도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금년 초부터 파티 정리과정이 시작됐으니 짧으면 내년,길면 후년까지도 세계경제는 유동성 파티의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아직까지는 금융불안의 영향이 실물경제로까지 파급되지는 않고 있지만 금융불안 기간이 길어지고 강도가 세지면 결국에는 세계경제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경제는 2000년대 전반기 '저물가-고성장'의 골디락스(Goldilocks) 시기를 마감하고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세계 금융불안과 경기침체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를 해외 금융시장 진출의 호기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대응노력도 병행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