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은행들이 지난 10월까지 86조원의 대출을 늘렸는데 이 중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으로 37조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돈은 은행신탁과 콜머니,한국은행 환매조건부채권(RP) 자금,해외 차입 등으로 조달했다.

이는 정상적인 자금 구조로 볼 수 없다."(11월30일 이흥모 한은 금융시장국장)

"은행들의 무리한 CD와 은행채 발행이 지속되면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해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10월30일 권혁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은행들의 비정상적인 자금 조달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증시에 예금을 빼앗긴 은행들이 CD와 은행채 발행으로 대출 재원을 마련하면서 시장 금리 상승의 주범으로 몰렸다.

여기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해외에서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통화당국이 단기 외화 차입을 규제하면서 은행들이 유동성 관리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은행 유동성 부족은 예고된 위기

상반기까지 '묻지마 대출'에 주력해 온 은행들이 곳간 걱정을 시작한 건 7월.주식시장 호황에 힘입어 은행 뭉칫돈이 펀드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심화됐다.

심지어 정기예금에서조차 매달 2조원씩 유출됐다.

은행들은 뒤늦게 자산관리계좌(CMA)의 대항마로 스윙 상품(일정 금액을 초과한 자금을 고금리 계좌로 넘겨주는 상품)을 출시했지만 금리 경쟁력에서 CMA에 밀려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정기예금 금리도 연 6%로 끌어 올렸지만 '머니 무브(자금의 대이동)'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월 말 기준 수시입출금식 예금은 연초 대비 16조6000억원 줄었고 정기예금도 하반기 들어서만 6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대출을 줄일 법도 한데 은행들은 대출 경쟁을 계속했다.

재원은 채권시장에서 마련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발행한 CD 총액은 25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1조2000억원)의 20배가 넘었고 은행채도 9월부터 지난해의 세 배 이상인 매월 3조원가량씩 발행하고 있다.

◆예금 줄고 규제 늘어 앞으로가 더 문제

은행의 유동성 위기설에 기름을 부은 것은 '원화 유동성 비율'(3개월 이내 만기 도래 자산/3개월 이내 만기 도래 부채)이라는 제도다.

금융감독원은 9월 말부터 매달 원화 유동성 비율을 10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예전에는 분기 말에만 100% 이상을 맞추면 됐던 것에서 기준이 훨씬 강화된 셈이다.

원화 유동성 비율 규제는 1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어서 은행들은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움직였다.

은행들은 9월부터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만기가 4개월 이상인 CD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4개월 이상의 CD를 발행하면 현금을 확보해 원화 유동성 비율의 분자인 자산을 올리는 반면 분모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몇 달이 지나면 그 CD도 3개월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로 잡히지만 당장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꼼수로라도 위기를 넘겨야 했던 것이다.

또 은행채를 사려는 수요가 없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은 최후의 현금 확보 수단으로 5년 넘게 6% 이상의 고금리를 보장하는 장기 은행채도 발행했다.

이 같은 임시 방편까지 동원해 은행들은 매달 유동성 비율을 10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주식형펀드로만 자금이 몰려 채권을 매입할 주체가 없다"며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겹쳐 해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은행의 자금 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규제가 증가하고 있는 점.금감원은 연말부터 은행에 적용하는 기업대출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을 높이기로 했고 한국은행은 은행채에 대해 지급준비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인석 중앙대 교수(경영대)는 "은행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은행의 자금 사정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건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은 보유 대출자산을 유동화하려는 노력 등을 기울여야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