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건설업계에 대한 긴급 지원에 나선 것은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미분양 등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가 자칫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수방관하면 5년 전의 신용카드 대란이나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등과 같은 금융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업체가 줄도산하게 될 경우 80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대출 중 상당액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소비와 투자에도 타격을 줘 경제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건설업계에 대한 무리한 자금 회수를 자제하고 신규 자금도 공급함으로써 최악의 사태를 사전에 막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들어 지난달 27일까지 부도가 난 일반 건설업체는 모두 107개.지난해 전체 106개를 이미 넘어섰다.

한승종합건설 신일 세종건설 동도 우남(부산 소재) 효명건설 등 중견 업체들도 부도를 면치 못했다.

건설업체가 연쇄 부도에 내몰린 이유는 분양이 안 되기 때문.지방에선 올초부터 신축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벌어졌으며 지난달엔 수도권인 파주신도시에서도 청약 미달 사태가 불거져 미분양 공포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9만8000여채로 10만채에 육박하며,최근 두 달 새 미분양 주택이 11만채로 늘어난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잠긴 돈만 15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의 미분양 주택 규모는 외환위기 직후인 1988년 말의 10만2000여채보다도 많은 것이다.

여기에다 9월 시행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려는 아파트가 연말·연초에 10만채 더 쏟아져 분양대란 및 건설업계 자금난은 더욱 꼬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주 후반 은행연합회 주관으로 긴급 실무협의를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핵심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좋은 우량 건설업체의 자금난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으로,구체적인 방안을 이르면 올해 안에 확정짓기로 했다.

이와 관련,은행권 관계자들은 "건실한 업체에 대해선 부동산 PF 관련 대출금 회수를 자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은행 임원은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공동협약을 만들고 준수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부동산 PF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ABCP 등에 대한 회수에 나서 부동산 PF 관련 유동화 자산 규모는 6월 말 22조원에서 9월 말 18조2000억원으로 4조원 가까이 줄었으며 이는 건설업체의 자금난을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은 또 사실상 대출인 채무보증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대출은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에도 많아 2금융권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관련 대출만 12조4000억원에 이르고 연체율은 7월 말 기준 12.8%로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다.

부동산펀드도 부동산 PF 대출이 5조5000억원에 달하며 보험사는 4조3000억원이다.

또 지원 대상 건설업체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는 문제로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건이 까다로울 경우 실효성에 문제가 생기고,대상을 확대하면 은행권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

이보다도 은행권 혹은 금융권 공동의 자율 협약이 제대로 준수되느냐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준동/황경남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