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64)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사람이다.

원격강의 MBA(경영학 석사) 코스인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을 비롯해 직함만 10개가 넘는다.

작년말 새해 세계 경제 전망과 한국의 좌표를 듣기 위해 도쿄 시내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스케줄이 빡빡하니 딱 1시간만 인터뷰 하자"던 그는 미국 유럽 아시아를 넘나드는 경제 전망과 한국의 새정부에 대한 주문 등을 쏟아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겼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불안합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인한 불안이 이어질 겁니다.

하반기에 들어서면 어느 정도 위기국면은 수습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번 서브프라임 문제는 비교적 일찍 잘 터진 셈입니다. 위기 요인이 너무 오래 곪으면 나중에 진짜 큰 위기가 터집니다."

―이번 위기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건 앞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달러 가치는 계속 떨어지는 반면 유로화는 강해져서 사람들이 유로를 가지려고 하는 '유로 시프트(Euro Shift)'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10년 전에 '신자본론'이란 책에서 달러와 유로의 주도권 싸움을 예상해 '대서양 전쟁'이란 표현을 썼었죠.달러와 유로가 싸우면 유로가 이길 가능성이 큽니다.

유로화엔 규율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로를 쓰는 15개국은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금리 등에 관해 일정한 수준을 지키도록 돼 있습니다. 이런 규제가 있는 통화는 운영은 어렵지만 일단 가동만 되면 큰 힘을 갖습니다."

―그럼 결국 달러는 몰락하게 되는 건가요.

"유로 시프트가 일어나면 미국인들도 달러 대신 유로를 가지려고 할 겁니다.

국민들까지 돌아서면 미국 정부는 권투 용어로 유로를 클린치(끌어 안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유럽과 공동 통화를 만드는 외엔 방법이 없지요.

'유라(Eular)' 또는 '달로(Dolro)'라는 이름으로 유로와 달러가 통합될 거란 얘깁니다.

미국과 유럽의 단일 통화 창설은 몇십년이 걸리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그에 대응하려면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엔화와 한국의 원화,중국의 위안화를 단일 통화로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이름은 '아시아(Asia)'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미국의 소비가 둔화되고 그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도 걱정인데요.


"중국은 미국에 물건을 수출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소비 감소는 중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죠. 중국 경제엔 버블(거품) 기미가 있는데,성장 감속이 자칫 버블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 한국과 일본 경제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일본은 연 2% 정도의 성장을 지속해 왔는데 '제로(0) 성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악영향이 더 클 겁니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한 몸이 돼가는 것 처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삼성 현대차 LG 같은 대기업들은 중국 뿐아니라 중남미 동유럽 러시아 등 세계 각지로 활동 무대를 다변화해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지만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클 겁니다."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주변국과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비즈니스맨 출신이고 실용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죠.사실 노무현 정부는 너무 정치적이고,대중 영합적이어서 대화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라면.

"한국의 위치를 빨리 재정립하는 것이죠.그동안 상실된 미국 일본 중국 등과의 신뢰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게 시급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의 조정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죠.노 대통령은 북한에는 부드럽게,일본엔 엄격하게,중국에 대해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태의 외교를 폈습니다.

미국과도 거리를 두면서 결국 한국은 북한하고만 조금 가까워졌을 뿐 외교적으론 고립되고 말았죠.이 당선인은 미국 일본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고,서로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구축하는 게 절실합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일본은 아직까지 배울 게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의 95%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엔고 시절에도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했던 게 일본 기업들이지요.

한국이 일본을 무시하고 미국을 아무리 좇아가도 미국처럼 강하게 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국토면적 자원 역사와 시스템 등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죠.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나라는 그래도 일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을 아직도 열심히 연구하는 대만은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만의 어떤 점이 배울 만한가요.

"대만은 불가사의한 나라입니다.

인구는 한국의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중국의 하이테크 관련 상위 40개사 중 14개사가 대만 회사지요.

알게 모르게 중국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는 게 대만 회사들입니다.

그렇다고 대만이 중국만 처다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을 연구하고,미국을 공부합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 능통한 사람들도 많지요.

가족들이 서로 다른 국적을 갖고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버지는 비즈니스상 중국 국적,어머니는 대만 국적,미국에 유학한 아들은 미국 국적,며느리는 일본인,뭐 이런 식이죠. 그런 글로벌 마인드와 다양성이 대만의 최대 장점입니다."

―새해 세계 경영계의 새로운 트렌드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해바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서 피기 때문에 밝은 부분만 보지요.

그런 것처럼 기업들도 이제는 미국 유럽 등 기존의 경제권만이 아니라 동유럽 인도 카자흐스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떠오르는 시장을 처다봐야 합니다.

냉전체제가 끝난 뒤엔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였지만 이제는 '다극체제'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2008년은 '번영의 다극화'가 이뤄질 겁니다.

한국 기업들도 해바라기처럼 다양한 나라를 향해 비즈니스를 하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chabs@hankyung.com /사진=도쿄 권철 포토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