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집념과 기다림의 승리였으며,운도 따랐다.

한라그룹이 마침내 잃어버린 기업 ㈜만도 '되찾기'라는 숙원을 풀었다.

선대 회장(고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 시절부터 사활을 건 '만도 인수'에 성공한 것.한때 계열사였던 만도를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말 구조조정 차원에서 외국계 펀드에 넘긴 지 8년 만이다.

한라건설은 21일 외국계 투자회사 선세이지(Sunsage)가 보유한 만도 지분 72.39%(539만1903주)를 6515억원에 인수키로 하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선세이지는 JP모건과 UBS캐피털이 합작해 만든 투자회사이다.

한라는 KCC,산업은행 PE,H&Q(국민연금 사모펀드)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세계 최대 사모펀드 KKR(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미국의 자동차부품업체 TRW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만도 인수에 성공했다.

이로써 건설과 콘트리트 등 4개 계열사를 가진 한라그룹은 사세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만도는 만도기계㈜의 제동 및 조향장치 제조사업 부문이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자동차부품 전문업체다.

◆'서브프라임 사태' 덕봤다?

한라가 외환위기 때 매각한 만도를 인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다.

선세이지의 대주주인 JP모건과 UBS캐피털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자금회수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하루빨리 만도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만도 지분 100% 인수를 조건으로 각각 1조2000억원과 1조1000억원을 제시한 KKR나 TRW를 제쳐두고 선세이지가 훨씬 낮은 가격에 한라측과 매각에 합의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인수대금에 있어서는 KKR와 TRW 쪽이 유리했지만 만도의 2대주주인 한라(17.9%)가 지분매각시 우선협상권을 갖고 있었고,만도의 최대 거래처인 현대.기아자동차도 한라를 측면지원하면서 선세이지는 손을 들고 말았다.

업계 관계자는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잘못하면 인수전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선세이지가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라 측은 그동안 잃어버린 만도를 찾아오기 위해 절치부심했으며,2005년 초 만도 매각 얘기가 흘러나오면서부터 3년간 인수작업을 추진해왔다.

한라 관계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운이 따랐다"며 "만도 인수의 최적업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외국계 대주주 측과 만도 노조 등을 꾸준히 설득해온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범(汎)현대가(家) 지원 '결정적'

서브프라임 사태 외에 선세이지 측을 항복시킨 무기는 한라에 대한 범 현대가의 측면지원이다.

특히 사실상 만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기술유출 등을 이유로 투기자본이나 외국계 부품사로의 매각에 반대입장을 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라그룹 고위관계자는 "현대차는 만도의 경영권이 또 다시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표명해왔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KKR나 TRW 등이 만도를 인수할 경우 부품 구매를 보장할 수 없다는 '초강수'까지 둔 것으로 전해졌다.

KCC는 한라컨소시엄에 직접 참가해 힘을 더했다.

한라건설 관계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2006년 숙부인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이 타계한 뒤 한라의 만도 인수에 큰 힘을 실어줬다"며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작년 7월 하순 양평과 원주에서 각각 열린 정인영 명예회장의 1주기 추도식과 흉상 제막식에 참석하는 등 형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만도 노조도 힘이 됐다.

만도 노조는 KKR 등 투기자본에 회사를 넘길 수 없다며 연일 항의집회를 갖는 등 결사 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