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국부펀드가 석유 곡물 등 상품 시장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신용경색 탓에 돈줄이 마른 사모펀드들까지 국부펀드의 '구원의 손길'을 붙잡으려 안달이 났다.국부펀드의 힘이 이처럼 막강해지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국부펀드 견제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건스탠리와 컨설팅회사 글로벌인사이트의 조사를 인용,총 3조달러(약 280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국부펀드 자산의 1%인 300억달러가 상품 시장에 투자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28일 보도했다.

모건스탠리는 국부펀드 자산 규모가 2015년 12조달러로 불어나 상품 시장에서 발휘하는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모건스탠리의 상품 투자전략 책임자인 보리스 시레이어는 "국부펀드의 상품 투자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앞으로 더 많은 국부펀드 자금이 상품 시장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불거진 신용 경색 때문에 대형 투자은행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사모펀드들도 투자은행 대신 국부펀드를 상대로 구애 작전을 펼치고 있다.

유럽계 사모펀드 테라 피르마의 가이 핸즈 대표와 미국 칼라일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대표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사모펀드 경영자 모임에서 "사모펀드들이 이미 중동과 아시아의 국부펀드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핸즈 대표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월가를 대체할 국제 금융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EU와 미국은 국부펀드의 영향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견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국부펀드들이 △자산 규모와 자금원 △투자 자산의 통화 구성 △해당국의 규제 등을 공표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다음 달 13일 EU 회원국 정상회의에 넘긴다.미국도 비슷한 규제를 구상 중이다.이 같은 규제로 국부펀드의 투명성을 높이고 자국 기업과 자산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자칫 국부펀드들의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게 EU와 미국의 고민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7일 "월가 투자은행들은 자금난 해결을 위해 국부펀드들로부터 차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정도로 당장 국부펀드의 돈이 아쉬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