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재배 10배 늘리고 해외시장 개척

최근 2년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세계 곡물가격 강세가 구조적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으로, 일시적이 아닌 만성적 현상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도 태스크포스를 가동, 국내 사료용 곡물 재배를 늘리고 적극적 투자를 통해 안정적 해외 식량 공급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바이오에너지.지구온난화 등 구조적 문제
우선 전문가들은 2006년부터 시작된 곡물가 급등이 바이오에너지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경쟁적으로 옥수수.콩 등을 이용한 에탄올 생산에 본격 나서면서 관련 곡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시장 국가의 인구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함에따라 식량 수요가 많아지는 대신 경지 면적이 줄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잦은 이상기후는 곡물 생산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더구나 달러 약세를 틈타 국제 투기자본들이 곡물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나 식량농업기구(FAO) 등은 올해 이후 곡물가격이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는 곡물 수출국 입장을 반영한 보수적 관측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보다는 바이오에너지 개발, 신흥시장 성장, 지구온난화 등의 상황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만큼, 국제 곡물시장이 '만성적 공급 부족' 구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농무부 추정에 따르면 2008곡물연도(2007년9월~2008년8월)말 기준 쌀.옥수수.밀.보리.귀리 등 세계 전체 곡물 재고율(재고량/소비량)은 14.6%에 머물 전망이다.

이는 1972~73년 '곡물 파동' 당시의 15.4%를 밑도는 사상 최저 수준이며, FAO의 권장 곡물 재고율이 18~19%인 점을 감안하면 '곡물 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 한국 곡물 자급률 27%..적자 눈덩이
만성적 세계 곡물 부족과 가격 상승은 세계 5위권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더욱 심각한 문제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곡물 자급율은 27%에 불과하다.

그나마 자급률이 각각 99%, 53%에 이르는 쌀과 보리를 제외한 밀.옥수수.콩류의 자급률은 각각 0.2%, 0.8%, 11.3% 수준으로, 식용.사료용 주요 작물의 대부분을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곡물값이 뛰자, 관련 교역 수지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곡류 수입액(29억2천877만달러)은 전년대비 38.4%나 급증했다.

물량 기준(1천235만3천t)으로는 오히려 2.6% 줄었으나 국제 곡물가 상승으로 단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품목별로는 사료.제분.기름용 등으로 들어오는 옥수수(18억3천371만달러)와 밀(8억5천629만달러), 콩류(4억6천824만달러)의 수입액이 각각 44.3%, 28.0%, 29.8% 크게 늘었다.

결국 곡물 수입 부담으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축산물 무역 적자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곡물가 상승과 함께 사료값도 오르면서, 당장 국내 축산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8% 정도 오른 축산농가의 사료비는 배합사료의 57%를 차지하는 옥수수 가격 강세에 해상운임 상승까지 겹쳐 올해 역시 7.4%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돼지고기 수입 증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돼지가격이 10% 정도 떨어지는 가운데 사료비까지 7% 오르면, 사육농가의 돼지 100㎏당 소득은 3만9천300원대로 작년보다 43% 감소한다.

이 경우 소득이 '0'을 밑도는, 즉 수입보다 경영비가 많은 돼지농가의 비율은 25%에 이르게 된다.

더욱이 국제 곡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가팔라 사료비가 각각 10%, 15% 뛰면 올해 돼지농가의 소득 감소율은 각각 48%, 56%, 적자 농가 비율도 각각 27%, 31%까지 치솟을 것으로 우려된다.

◇ 노는 땅에 청보리 심어 사료로
이처럼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정부도 관련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단 농수산식품부는 곡물가 상승과 관련, 현재 ▲ 사료.비료 지원 ▲ 해외농업개발 ▲ 국내 중장기 대책 등 세 개 부문의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다.

사료.비료 지원팀은 단기적 차원에서 당장 농업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찾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양돈.한우 농가에 대한 1조원 규모의 사료 구매자금 지원이 이번달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연 3%, 상환기간 1년 등의 좋은 조건에 사료 살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현재 7개 주요 사료용 원료 곡물의 할당관세를 하반기부터 0%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 올해 말로 끝나는 배합사료 부가가치세 영세율 시한을 2011년까지 3년 연장하는 방안 등도 추진된다.

비료의 경우 현행 17% 수준인 유기질 비료 구입비 보조율을 30%까지 인상할 방침이다.

국내 중장기 대책팀에서는 사료 작물 재배 확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정부는 보리 및 쌀 수요 감소로 늘어난 휴경지를 활용, 작년말 현재 14만5천ha에 불과한 사료작물 재배 면적을 오는 2015년까지 24만ha로 66% 늘릴 계획이다.

특히 값은 저렴하지만 영양면에서 수입 사료와 대등한 청보리의 경우 재배 면적이 9천ha에서 10만ha로 거의 10배까지 확대한다.

아울러 사료 곡물 재배를 유도하기 위해 농가에 청보리.귀리 등 종자 구입비를 일정 부분 대주는 방안,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료 작물 육성 차원에서 전국 200여곳에 청보리.귀리.호밀 등 우수 맥류 품종 시범포를 조성하는 방안 등도 검토되고 있다.

곡물 자급률 제고 방안과 관련, 전문 연구 용역도 곧 발주할 예정이다.

◇ 해외농업투자, 곡물 장기.선물거래 확대해야
해외농업개발팀은 이 부문에 정통한 민.관.학 관계자 30명으로 구성된 포럼을 운영하며 ▲ 품목.지역별 해외 농업 투자.진출 가능성 ▲ 해외 진출 희망 민간 부문 지원 방안 ▲ 해외 농업 개발.투자 관련 정보 인프라 및 해외 진출 농업인 네트워크 구축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연해주를 중심으로 10여개 민간단체 및 기업이 해외에 농지를 확보, 투자하고 있으나 성과는 거의 없는 상태다.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부터 현지 기후.문화.제도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다 정부의 재원.기술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전문가들은 곡물가 강세 장기화에 대비, 업계도 곡물 거래 방식을 바꿔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곡물 수입업계는 대부분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입찰에 참여, 필요한 양의 곡물을 현물로 사들였으나 곡물값 고공행진이 된다면 보다 많은 물량의 장기 도입 계약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또 같은 맥락에서 도입 시점에 앞서 가격을 정하는 선물 계약 확대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현재 일본.중국 등 주요 곡물 수입국들은 선물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곡물 수입량의 30% 안팎만 선물시장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일괄 현물거래로 들여오고 있다.

농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곡물의 선물거래는 상황에 따라 손해 위험도 큰 만큼 기본적으로 수입업체가 위험 감수 여부를 판단할 문제로, 정부가 도입을 강제하거나 유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박사는 "장기 계약이나 선물 거래 등을 위한 자금을 정부가 기금 등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