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계 전자시장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글로벌 패권전쟁의 노련한 영웅 소니가 한국의 젊은 장수 삼성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소니의 시장가치는 삼성전자의 네 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소니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삼성전자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2006년 말 삼성전자의 시장가치는 101조원으로 2000년 대비 5배나 성장했으며 소니는 그 절반에 그쳤다.

디지털 변혁기에 첨예하게 엇갈린 두 회사의 운명.반세기 동안 최강자의 위치를 누리던 소니가 갑자기 쇠락하고 무명 브랜드에 가깝던 삼성전자가 부상하게 된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과 소니'(장세진 지음,살림Biz)는 바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고려대 국제경제학과 교수이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방문교수인 저자가 미국 와일리출판사에서 펴낸 영문판 'SONY vs. SAMSUNG'의 한국어 번역본.

저자는 이 책에서 소니와 삼성의 부침을 리더십과 경영시스템의 관점으로 해부한다.

지난 10년간 전자산업의 디지털화 속에서 소니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하드웨어와 콘텐츠 간의 시너지를 추구했다면 삼성전자는 핵심부품의 생산에 집중해 경쟁우위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는 "소니의 부진과 삼성전자의 급격한 부상이 두 기업의 기술,마케팅,글로벌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은 인상을 줄지도 모르지만,기업 내부의 조직프로세스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더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다.

소니의 경우 최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녔지만 이데이 전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면서 개별사업부들이 다른 사업부와 협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전략실행 능력이 무력해졌다.

사업부 간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이기적인 '사일로(silo) 조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반면 삼성은 특유의 스피드와 디지털 제품에 대한 과감한 투자,삼성전자 특유의 강한 실행력으로 소니를 추월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삼성이 10년 전 전성기의 소니와 매우 닮았다고 말한다.

소니가 최고경영자의 막강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통솔하며 전성기를 누리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 뒤 전략실행력 저하를 초래한 과정은 삼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이 내외의 견제와 복잡한 경영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을 때도 지금과 같은 일사불란함과 실행중심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는 "점차 복잡하고 고도화하는 경영환경은 이건희 회장의 '황제경영'과 비서실 조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포경영'이라고 불릴 정도의 규율 통제와 조직의 피로도,옅어지는 충성도 등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의 사업부 간 시너지는 결국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에 의존하는 것이다.소니의 경험을 뒤돌아보면,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창업자 세대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전될 때 조직에 많은 혼란이 생겼던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삼성전자는 이러한 승계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혼란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380쪽,1만7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