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이크로소프트 재팬 직원들은 작년 초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일본 대형자동차회사 D사의 고위임원이 직원과 함께 제발로 찾아와 '공개사과'를 하고 간 것. D사의 사무실에서 MS제품을 불법 복제한 일을 자체 적발했다는 게 이유였다.

일본 기업의 지식재산 존중 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최휘영 NHN 사장이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중학교를 찾아가 강의했을 때의 일이다.

최 사장이 "인터넷에서 무료로 음악을 내려받아 집에 있는 PC(개인용 컴퓨터)에 보관만 해도 불법이란 거 아느냐"고 묻자 학생들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말이요?" 콘텐츠 무단 도용에 대한 불감증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만연했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은 '불법 천국'으로 통한다.

콘텐츠에 제값을 치르는 '바보'들이 없으니 생산이 활발할 리 없다.

국산 소프트웨어(SW)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에 불과하고 영화(3.5%) 음악(1.0%) 출판(4.0%)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변방이나 다름없다.

◆온라인 콘텐츠는 공짜?

저작권보호센터의 '2007년 국내 SW복제 현황'에 따르면 일반 가정의 불법 복제율은 48.41%에 달한다.

기업 PC 한 대당 불법 복제율도 25.03%다.

일본의 경우 기업은 '제로'에 가깝고 전체로도 25%에 불과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임우성 한국MS 이사는 "이런 까닭에 국내 SW 기업엔 컨슈머(소비자) 영업 부서가 없다"며 "개인용 SW 시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헐값에 소프트웨어를 구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닌텐도DS란 게임기를 살 때 9만원만 추가하면 약 150만원어치 게임을 공짜로 준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구입한 100만원짜리 조립 PC엔 값을 지불하지 않은 2000만원가량의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다는 게 정설이다.

'불법 복제 강국'이란 오명은 문화콘텐츠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2007 저작권 침해 방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음악,영화,출판 등에서 불법 복제품 시장 규모가 2조1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합법 시장(4조537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음악 시장은 불법 시장이 연 4567억원으로 합법 시장 규모(3708억원)보다 큰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DVD 복제물이 워낙 빠르게 불법으로 유통되다 보니 미국의 영화배급사들이 첫 개봉지로 한국을 택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 복제는 관련 산업 발전의 싹을 자른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토종 SW업체 가운데 연매출 300억원 미만 기업의 비중이 96.5%에 달할 정도로 영세하다"며 "새로운 것을 개발해도 대부분 불법 복제의 피해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중고ㆍ렌털 숍으로 불법복제 줄여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채찍은 더 강력하게,당근은 더 달콤하게'라는 원칙을 제시한다.

'채찍'과 관련해선 불법 복제에 대해 '삼진 아웃제'를 적용하고 있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세 번 이상 적발되면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게끔 회선을 차단해 버리는 것.한 번 '낙인' 찍힌 개인은 각종 사이트에 본인 명의로 가입할 수도 없다.

일본에선 개인 간 파일 공유 사이트(P2P)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일본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대표적 P2P인 위니(winny) 개발자가 최근 저작권 침해 방조죄로,위니를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배포한 네티즌 역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미국도 저작권 보호에 강경하다.

글로벌 SNS(인맥관리 서비스) 사이트를 운영 중인 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는 "미국에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책 내용을 블로그에 인용하면 1개월 안에 변호사로부터 경고문이 날아온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력한 단속엔 '풍선 효과(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가 따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휘영 사장은 "불법 사이트를 통하지 않고도 싼 값에 디지털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는 유통 경로가 활성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게임 소프트웨어,음악,책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중고 유통과 렌털 숍이 활발한 것도 불법 복제를 줄이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선 출처 없는 리포트 냈다간 정학 6개월

외국 유학생들은 이런 한국을 어떻게 평가할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사카타 사요씨(28)는 "일본에서는 통째로 책을 제본하는 일이 없었는데 한국에 오니 교수님이 책을 제본해서 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며 "한국 사람들 특유의 '서로 나눠 쓰는' 문화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캐나다인 S씨는 "캐나다의 경우 출처를 밝히지 않고 리포트를 작성했다가 적발되면 6개월간 학교에 갈 수 없다"며 "심지어 '표절했다(plagiarized)'는 말이 영구적으로 학사 기록에 남기 때문에 교수가 되는 일은 꿈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이 같은 문화에 익숙지 않은 것 같다"며 "제자들 중에 미국 캐나다 등으로 유학을 갔다가 표절 문제로 학교에서 퇴교 조치당해 한국에 돌아온 사람도 몇몇 있다"고 전했다.

박동휘/이상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