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 창업자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안철수 의장(46)이 오랜만에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입을 열었다.

한국 정보보호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안 의장은 최근 오픈마켓 옥션이 해킹을 당해 1081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정보보안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데 대해 우선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30일 귀국한다.

―와튼스쿨에서 공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모델로 삼을 만한 교수들이 많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수가 많아 유익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특히 렌 로디쉬 교수는 도움을 준 벤처기업이 수백개나 될 정도로 산업현장에 많은 경험을 가진 분이었다.

로디쉬 교수가 어느 학생의 창업 아이디어를 듣고 한번 도전해보라며 즉석에서 2000달러 수표를 끊어준 건 유명한 일화다."

―미국 벤처산업에 대해 느낀 점은.

"실리콘 밸리에는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넘쳐난다.

새로운 20대 벤처경영인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한국은 이와 반대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창업 열기는 점점 식고 있다.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200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중소ㆍ벤처기업이 부실해지면 중산층이 붕괴되고 사회양극화도 심화된다.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능력을 떨어뜨려 시장이 축소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대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 IT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중소ㆍ벤처기업 경영진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기업 지원 인프라를 보완해야 한다.

정부,금융권,대학,벤처기업 등 IT산업 관련 주체들이 문제점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힘을 모아야 한다.

중소ㆍ벤처기업은 외부 환경만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고 문제를 찾아야 한다.

현실에 근거한 치밀한 전략과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전문성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등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귀국하면 국내 벤처기업에 도움이 되도록 최고학습책임자(CLO) 역할을 맡겠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직책을 갖고 있는가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가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역할은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중소ㆍ벤처기업의 경영자와 직원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중소ㆍ벤처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CLO는 '직책' 보다는 '역할'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해낸 것이다.

귀국 후 KAIST 석좌교수직을 맡기로 했는데,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유용한 직책이기 때문이다."

―옥션 등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는가.

"선진국에서는 IT(정보기술) 투자 예산의 8% 이상을 보안에 쓰고 있다.

투자의 효율성을 철저하게 따지는 이들이니 헛되이 돈을 쓸리는 없을 거다.

성수대교 붕괴 때 경험했듯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점검과 유지보수가 더 중요하다.

IT 투자도 마찬가지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사용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유지보수에도 신경써야 한다.

보안이 바로 필수적인 유지보수에 해당한다."

―유지보수에 소홀한 게 한국의 문제점이란 얘긴가.

"그렇다.한국은 보안에 투자하는 예산이 IT 예산의 1%에도 못 미친다.

많은 기업들이 당장은 사고 없이 넘어가 돈을 아꼈다고 좋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4분의1에 해당하는 10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00%의 확률로 예견할 수 있는 사태였다."

―정보보호 업무가 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나눠져 있어 정부 내에서조차 사공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정부 내 한 조직에 최고보안책임자(CSO:Chief Security Officer) 역할을 맡기고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공공부문의 정보보안은 물론 정보보안 정책을 일관되고 책임있게 추진하려면 조직 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KAIST에서는 기술경영 분야를 강의한다고 하던데.

"대학원 과정이 아닌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가르칠 생각이다.

교과서 위주가 아닌 기업가들의 자서전,인터뷰,사례연구 등을 토론 위주로 가르칠 생각이다.

기업가 정신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경영 분야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벤처기업 경영자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조언할 말이 있다면.

"벤처기업을 세울 때는 어쨌든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책임감이 중요하다.

기업을 하다보면 창업 초기에는 모든 게 장밋빛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자신감이 꺾이고 자꾸 외부의 도움이나 시장의 우호적인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벤처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은 정부의 지원이나 펀딩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시장논리로만 보면 기업들은 환경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나가는 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