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자동차의 친환경차 전략이 위기를 맞고 있다.

2004년 도요타 하이브리드시스템(THS)을 도입,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이스케이프 하이브리드'를 내놓으며 친환경차 시장에 본격 진출할 때만 해도 모든 게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이 움튼 그때 진짜 고난이 시작됐다.

부품 조달에서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 잇따랐다.

하이브리드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아이신AW 등 도요타 협력업체들이 필요한 만큼의 물량을 제때 공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높은 부품단가로 인해 하이브리드 제조원가를 낮추기도 어려웠다.

결국 포드는 2010년까지 25만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려던 계획을 바꿔 '에코 부스트(Eco Boost)'라는 자체 개발한 고연비 엔진기술을 적용한 차량 생산을 확대키로 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새로운 방식의 하이브리드인 플러그인카(가정용 전기로 충전,운행하는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친환경차 경쟁,관건은 부품기술

미국 GM과 독일 BMW 및 다임러벤츠는 도요타 하이브리드 기술(THS)과 전혀 다른 '2모드 하이브리드'라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개발비용에 대한 부담을 낮추면서 도요타가 보유한 특허기술을 피하고 독자적인 부품망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포드 사례에서 보듯 독자적인 부품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하이브리드카 양산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확보하기 어렵다.

일본 닛산도 도요타로부터 THS로 불리는 변속기와 모터,제너레이터(발전기) 등을 공급받고 파나소닉EV에서 배터리를 받아 중형차 알티마 하이브리드를 생산하고 있으나 사업확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부품공급 제약 등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열세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혼다의 경우 파나소닉EV로부터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납품받아오다 산요를 새로 끌어들여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안정적인 부품 조달이 절실한 데다,경쟁이 이뤄져야 기술 업그레이드 속도가 빨라지고 납품가 인하도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부품 30% 수입하는 한국 친환경차

현대자동차는 최근 하이브리드카에 필요한 일부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잠정 중단했다.

내년 7월 양산을 시작하는 '아반떼 LPG 하이브리드카'에 필요한 부품을 100% 국산화한다는 당초 계획을 수정한 것.일본에 크게 처지는 기술수준을 고려할 때 무리한 부품 국산화가 자칫 양산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판단했다.

현대로템이 모터와 제어기,LG화학이 배터리,동아일렉콤이 직류변환기 등 주요 부품을 납품할 예정이지만 부품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소재 등은 상당 부분 일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유영면 지식경제부 미래형자동차사업단장은 "도요타에 비해 하이브리드카 부문의 기술 경쟁력은 대략 85% 수준에 있다고 본다"며 "관련 부품 분야만 떼어놓고 보면 그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당수 부품을 국산화했지만 모터와 배터리,변환기 등의 경우 일본에서 원재료를 사오지 않고서는 만들기 어렵다"며 "금액 기준으로 30% 정도는 수입 부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의 경우 완성차 업체와 부품 업체가 폐쇄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며 "당장은 일본에서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겠지만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가 언제든지 개입해 거래관계를 끊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높은 부품 수입의존도로 인해 제조원가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일반 차량보다 400만~500만원의 재료비가 더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의 20만엔(약 19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하이브리드카의 성능을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무대책 정부에 부품사 발만 동동

차량용 에어컨 등을 만드는 A사는 몇 달째 신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를 미루고 있다.

아반떼 LPG하이브리드카에 들어갈 제품 개발을 마쳤지만 어느 정도 물량을 납품해야 할지 어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카가 판매되겠지만 얼마나 팔릴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생산계획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부품경쟁력 열세가 부품업체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차 등은 "미국과 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이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는 친환경차 수요진작책을 언제,어떻게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부터 정부가 빨리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구인력 확보와 영세 부품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R&D(연구개발) 자금 지원도 절실하다.

자동차공업협회는 친환경차 육성을 위해 매년 2000억원을 저리 융자 등의 방식으로 부품사에 지원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대답이 없다.

유영면 단장은 "국내 하이브리드카 연구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 인력풀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고 대우를 해주는 현대ㆍ기아차도 전문 연구원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할 정도니 중소 부품사는 말할 것도 없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