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진보적 혁명은 늘 동생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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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따금 학계를,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사고를 뒤흔드는 책이 나타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로부터 이런 서평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사사건건 대립했던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에드워드 윌슨에게 한 목소리로 격찬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사학자이자 진화발달심리학자인 프랭크 설로웨이가 1996년에 쓴 '타고난 반항아'는 출간과 동시에 열렬한 찬사와 '사회과학 소설'이라는 혹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신의 섭리도,계급 간의 불평등도,합리적 이성도,억압된 성욕도 아니라 가족 내의 소소한 다툼이라는 주장을 무심하게 흘려들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타고난 반항아'는 부모의 투자와 관심을 놓고 자녀 간에 벌이는 경쟁이 자녀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진화적으로 분석한다.
출생 순서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다.
출생 순서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출생 순서가 형제들 사이의 나이,크기,지식,경험 등의 차이를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동생들보다 언제나 더 크고 힘도 세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지배적이며 자신감이 넘친다.
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갓 태어난 동생에게 일부를 빼앗긴 적이 있어서 현 상태 유지에 애쓴다.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성실하고 성적도 우수하다.
정치 지도자나 노벨상 수상자,대학교수에는 첫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반면에 동생들은 첫째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미개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부모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모험적이며 반골 기질이 있다.
동생들은 힘으로 첫째를 못 당하므로 더 사교적이고 친화적이며 사회의 다른 소외자들과 쉽게 공감한다.
왜 놀부가 흥부를 힘으로 윽박질러 내쫓으려 했는지,왜 흥부가 불쌍한 제비를 동정했으며 과감하게 박을 켜는 시도를 했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물론 놀부가 흥부보다 공부를 잘했을 성 싶지는 않지만).
설로웨이는 어떻게 그의 가설을 검증했을까? 그는 26년간 지난 5세기 동안 과학,정치,사회 분야의 121가지 혁명에 참여한 6566명의 전기적 자료를 수집했다.
그동안 읽은 전기는 2만권이 넘었고,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주관적 오류를 피하고자 110명의 사학자에게 각 인물이 혁명에 동조한 정도를 평가하게 했다.
이 끔찍한 작업을 통해 설로웨이는 종교개혁에서 다윈 혁명,미국 민권 운동에 이르는 61개의 진보적 혁명이 주로 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보였다.
빌 게이츠,마틴 루터 킹,나이팅게일,아라파트,나폴레옹,레닌,다윈,간디,마르크스는 모두 동생이었다.
반대로 우생학,생기론과 같은 보수적 혁명들은 주로 첫째들이 이끌었다.
마오쩌둥,스탈린,무솔리니,흐루시초프는 첫째였다.
이 책을 출생 순서만 강조하는 새로운 숙명론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설로웨이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출생 순서뿐만 아니라 나이,성별,사회 계급,부모-자식 갈등,형제 간 터울,인종,기질,형제의 수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한 통계 모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출생 순서와 부모-자식 갈등이 급진적인 혁신을 낳는 가장 중요한 두 요인임을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첫째라도 다른 덜 중요한 요인들에서 크게 힘을 받아 혁신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많은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자기 부모나 형제의 성격을 평가하게 하면 설로웨이가 주장하는 출생 순서 효과가 정말 나타난다.
그러나 자기 성격을 스스로 평가하게 하거나 친구나 직장 동료의 성격을 평가하게 하면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친구에게 "너 첫째지?"라고 넘겨짚거나 모험심 많고 개방적인 상사에게 "사장님,집에서 동생이시죠?"라고 물어봤자 핀잔 듣기 십상이란 말이다.
물론 설로웨이는 자신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가족 내 성원 간의 차이에 대한 이론이므로 가족 내부의 평가에서만 출생 순서 효과가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발달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가 비판하듯이,출생 순서가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만 중요할 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타인과 더불어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출생 순서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대작이다.
좋은 책은 올바른 진리로만 가득 채워진 책이 아니다.
독자가 쌓아온 지식 전체에 도발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상식'이나,진화심리학은 유전자만 중시할 뿐 출생순서나 계급 같은 환경의 역할은 간과한다는 '믿음'이 책을 통독한 후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지켜보길 바란다.
전중환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로부터 이런 서평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사사건건 대립했던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에드워드 윌슨에게 한 목소리로 격찬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사학자이자 진화발달심리학자인 프랭크 설로웨이가 1996년에 쓴 '타고난 반항아'는 출간과 동시에 열렬한 찬사와 '사회과학 소설'이라는 혹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신의 섭리도,계급 간의 불평등도,합리적 이성도,억압된 성욕도 아니라 가족 내의 소소한 다툼이라는 주장을 무심하게 흘려들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타고난 반항아'는 부모의 투자와 관심을 놓고 자녀 간에 벌이는 경쟁이 자녀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진화적으로 분석한다.
출생 순서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다.
출생 순서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출생 순서가 형제들 사이의 나이,크기,지식,경험 등의 차이를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동생들보다 언제나 더 크고 힘도 세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지배적이며 자신감이 넘친다.
또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갓 태어난 동생에게 일부를 빼앗긴 적이 있어서 현 상태 유지에 애쓴다.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성실하고 성적도 우수하다.
정치 지도자나 노벨상 수상자,대학교수에는 첫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반면에 동생들은 첫째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미개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부모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모험적이며 반골 기질이 있다.
동생들은 힘으로 첫째를 못 당하므로 더 사교적이고 친화적이며 사회의 다른 소외자들과 쉽게 공감한다.
왜 놀부가 흥부를 힘으로 윽박질러 내쫓으려 했는지,왜 흥부가 불쌍한 제비를 동정했으며 과감하게 박을 켜는 시도를 했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물론 놀부가 흥부보다 공부를 잘했을 성 싶지는 않지만).
설로웨이는 어떻게 그의 가설을 검증했을까? 그는 26년간 지난 5세기 동안 과학,정치,사회 분야의 121가지 혁명에 참여한 6566명의 전기적 자료를 수집했다.
그동안 읽은 전기는 2만권이 넘었고,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주관적 오류를 피하고자 110명의 사학자에게 각 인물이 혁명에 동조한 정도를 평가하게 했다.
이 끔찍한 작업을 통해 설로웨이는 종교개혁에서 다윈 혁명,미국 민권 운동에 이르는 61개의 진보적 혁명이 주로 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보였다.
빌 게이츠,마틴 루터 킹,나이팅게일,아라파트,나폴레옹,레닌,다윈,간디,마르크스는 모두 동생이었다.
반대로 우생학,생기론과 같은 보수적 혁명들은 주로 첫째들이 이끌었다.
마오쩌둥,스탈린,무솔리니,흐루시초프는 첫째였다.
이 책을 출생 순서만 강조하는 새로운 숙명론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설로웨이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출생 순서뿐만 아니라 나이,성별,사회 계급,부모-자식 갈등,형제 간 터울,인종,기질,형제의 수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한 통계 모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출생 순서와 부모-자식 갈등이 급진적인 혁신을 낳는 가장 중요한 두 요인임을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첫째라도 다른 덜 중요한 요인들에서 크게 힘을 받아 혁신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많은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자기 부모나 형제의 성격을 평가하게 하면 설로웨이가 주장하는 출생 순서 효과가 정말 나타난다.
그러나 자기 성격을 스스로 평가하게 하거나 친구나 직장 동료의 성격을 평가하게 하면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친구에게 "너 첫째지?"라고 넘겨짚거나 모험심 많고 개방적인 상사에게 "사장님,집에서 동생이시죠?"라고 물어봤자 핀잔 듣기 십상이란 말이다.
물론 설로웨이는 자신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가족 내 성원 간의 차이에 대한 이론이므로 가족 내부의 평가에서만 출생 순서 효과가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발달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가 비판하듯이,출생 순서가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만 중요할 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타인과 더불어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출생 순서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대작이다.
좋은 책은 올바른 진리로만 가득 채워진 책이 아니다.
독자가 쌓아온 지식 전체에 도발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상식'이나,진화심리학은 유전자만 중시할 뿐 출생순서나 계급 같은 환경의 역할은 간과한다는 '믿음'이 책을 통독한 후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지켜보길 바란다.
전중환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